[특집-IMF형 가전] "거품" 걷어내고 깐깐하게 만든다

「껍데기는 가라.」

어느 유명시인의 시 한구절이 최근 가전업계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IMF한파로 인한 가계소득 감소가 일반소비자의 구매행태를 실속있는 제품을 선택하도록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고기능, 대용량의 제품을 선호하던 경향이 알차고 저렴한 제품으로 급격히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형화, 고가화로 치닷던 가전제품이 IMF 실속형으로 급반전되고 있는 이같은 현상은 비단 가전제품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소비패턴과 나아가 문화생활까지 파급되고 있다. 그동안 거품으로 둘러싸인 사회전반을 구조조정으로 이끌어낼 것이라는 섣부른 사회학적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가전업계는 지속되는 판매부진을 타개하고 매출을 확대하기 위해 기본기능에 충실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실속형 제품들, 일명 IMF형을 내세워 불황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업계 입장에서는 원가를 절감하면서도 구매력을 부추길 신상품으로 부진을 돌파할 수 있고 소비자는 가격에서 부담스런 거품이 빠졌기 때문에 구매가 용이해 양자간의 이해가 딱 맞아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LG전자, 삼성전자, 대우전자 등 가전 3사는 주력제품인 TV, VCR,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에어컨에서부터 소형가전에 이르기까지 실속형 제품들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컬러TV의 경우 가전 3사와 아남전자는 화면 크기가 동일하면서도 자동영상, 다중화면 등과 같은 부가기능을 삭제해 소비자가격을 최고급 모델과 비교해 절반 정도 낮춘 60만∼70만원대의 염가형 29인치 컬러TV를 출시, 침체된 내수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그동안 29인치와 같은 대형TV에만 채용해왔던 절전기능을 20인치 중소형 제품으로 확대적용해 소비자들의 절전심리를 자극하는 마케팅도 펼치고 있다.

냉장고의 경우 기본 냉각기능에 필수요소만 갖춘 실속형과 절전기능을 설정해 20% 정도 절전효과를 가지는 제품, 특히 내외장재에 거품을 빼 냉장실 선반을 유리에서 플라스틱으로 바꾸거나 손잡이의 금도장을 없애는 방법으로 개발비용을 줄여 가격을 절감한 제품도 등장했다.

대용량 제품에서 채용된 디스펜서 기능과 탈취기능을 없애고 무광택 외장재를 채용해 가격을 5만∼10만원 정도 낮아졌다.

전자레인지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절전과 잠금 등의 부가기능을 없애고 다양한 조리기능도 한 데 묶어 단순화한 보급형 모델을 잇달아 출시되고 있다. 세탁기의 경우 물과 전기를 15∼20% 절약할 수 있는 절수코너를 이용하거나 전력소모량을 줄일 수 있는 초절전형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여름가전으로 대표적인 에어컨의 경우 공기정화기능, 항균기능 등 고급기능을 생략하고 가격을 3분의 1 정도 내린 실속형 에어컨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가전업계는 IMF한파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 이들 염가형 제품을 일시적으로 소비자의 입맛을 맞추는 단기정책으로 끝내지 않고 앞으로 판매 주력모델로 집중 육성해 매출부진을 탈피하겠다는 전략이며 이 전략은 잘 맞아 떨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기존 제품에 비해 10만원 가량 저렴한 5백ℓ급 IMF형 냉장고를 출시, 2월 한달 동안에만 4천9백대를 판매해 5백∼5백40ℓ대의 판매비중이 예년의 8%에서 25%로 높아졌다. 이 제품의 판매신장은 지난달에도 이어져 2월의 배에 가까운 8천8백대가 판매돼 단일 모델로는 최고의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2월 기존 모델에 비해 10만원 가까이 가격을 낮춰 출시한 5백ℓ급 냉장고의 경우 3월 들면서 전달에 비해 판매량이 2배 이상 늘어 출시 2개월여만에 전체 냉장고 판매량의 10%를 차지하는 놀라운 실적을 올리고 있다.

또 컬러TV의 경우는 기존 보급형 모델 중 IMF형으로 선정만 했는데도 20인치의 경우 최근 3개월 동안 월평균 15% 이상의 판매신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지난 3, 4월 판매추이를 보면 실속형 중저가 제품들이 전체 매출비중의 50%를 육박하고 있은 정도로 효자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LG전자의 경우 지난해 1, Mbps분기에는 29인치 TV 중 90만원대 이상 중고가가 55%의 판매비중을 보였으나 올해에는 70만원대 이하 저가 제품이 60% 정도의 비중을 차지했다.

계속되는 내수침체 속에서 이들 실속형 제품을 유일한 돌파구로 인식한 업체들은 하반기에는 더욱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매출확대를 도모한다는 전략이다.

오디오 분야 역시 군살이 빠지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통합앰프, CD플레이어, 튜너, 카세트테이프데크, 스피커 등 풀스펙으로 구성돼 있는 오디오시스템이 시장을 주도했지만 최근엔 이 틀을 깨고 소비자들에게 꼭 필요한 품목만으로 시스템을 구성, 가격거품을 제거한 IMF형 제품들이 출시돼 시장흐름을 바꿔놓고 있다.

IMF형 제품은 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기존 시스템에서 불필요한 품목 및 기능을 제거해 가격을 대폭 낮춘 저가 경제형 제품이며 다른 하나는 통합앰프와 튜너를 합친 AV리시버앰프에 스피커시스템만 연결시킨 간단한 형태의 맞춤형 제품이다.

오디오업계는 경제형 제품으로 미니컴포넌트와 마이크로컴포넌트를 내세우고 있다.

미니컴포넌트의 경우 해태전자의 캐비시리즈를 비롯해 아남전자의 INX-27, 롯데전자의 핑키-55, 태광산업의 괴헬-390 등 소비자가격이 40만∼60만원대 제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이들 제품은 실제 전문매장에서는 20∼3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고 있어 예비 신혼부부나 청소년층으로부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오디오업체들은 또 한때 미니컴포넌트와 헤드폰카세트에 밀려 수요 감소세를 보이던 마이크로컴포넌트가 IMF시대를 맞아 실속형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고 소비자가격이 30만∼40만원대인 신제품을 속속 출시, 침체된 오디오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IMF 극복을 위해 경제형 제품과 함께 올 들어 적극 공략하고 있는 또 다른 제품이 바로 맞춤형 오디오다.

맞춤형 오디오의 가장 큰 장점은 필요한 단품만 구입해 기존 시스템과 연결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시스템 구성비용이 적게 든다는 데 있다. 기존 오디오시스템은 거실이나 안방의 실내면적을 상당히 차지하는 데 반해 맞춤형은 TV 장식장 안에 AV리시버앰프를, 벽 구석이나 천장에 스피커를 설치하면 되기 때문에 점유면적도 크게 줄어든다. 여기다 음악 소스용 기기로 현재 사용하고 있는 CD플레이어만 연결하면 기본적인 오디오시스템이 구성된다.

맞춤형 오디오의 또 한가지 장점은 적은 비용으로 안방극장(홈시어터)시스템을 손쉽게 설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오디오 업체들은 2백만∼3백만원대의 하이파이 오디오로 홈시어터를 설치하라고 권유했지만 일반인들이 사기엔 고가 제품이어서 판매가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요즘엔 AV리시버앰프와 스피커 등의 오디오 부문과 TV 및 6헤드 하이파이 VCR 등 비주얼 부문만 있으면 일반인들이 만족할 만한 홈시어터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 제품가격은 AV리시버앰프 40만원대와 스피커시스템 10만원대 등 50만원 가량이 최소 비용이며 6헤드 하이파이 VCR가 없을 경우 30만∼40만원의 VCR 구매비용을 추가하면 된다.

이밖에도 기존 오디오시스템은 호환성이 없어 단품 하나가 고장나면 시스템 전체를 교체해야 했으나 맞춤형 오디오의 경우 단품을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어 향후 단품시장은 물론 부품판매 및 중고시장이 크게 활성화할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대형 가전제품, 오디오에 이어 주방가전제품에도 실속 바람이 솔솔 불고 있다.

가스레인지, 가스오븐레인지,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등 주방가전제품은 신혼수요 및 교체수요가 일정정도 시장규모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판매량이 비교적 완만하게 감소하고 있으나 장기적으로 시장확대가 필요한 고가, 고급 기능의 일부 모델들은 수요가 크게 위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동양매직, 린나이코리아 등 주방가전 전문업체들은 그동안 쌓아둔 인지도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가에서부터 중가, 저가까지 골고루 갖춰놓은 제품 라인업을 십분활용하고 있고 LG전자, 대우전자도 각각 중저가 기계식 가스오븐레인지나 염가형 가스그릴레인지 등을 실속형 제품으로 선보이고 있다.

현재 출시돼 있는 실속형 가스오븐레인지는 대부분 60만∼70만원대.

음식을 끓일 수 있는 버너와 쿠키, 빵, 바베큐, 피자 등을 요리할 수 있는 오븐, 생선, 갈비 등을 통째로 구울 수 있는 브로일러를 모두 갖추고 있으면서도 자동요리기능, 전자식 마이컴 등을 생략해 가격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심지어 그릴을 오븐 크기로 확대, 오븐레인지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특판용 그릴레인지도 시판되고 있다.

가스레인지는 그릴이 없이 두 개 버너만 갖춘 보급형 제품들이 주로 출시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7만원대의 초저가 상품도 나와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자극시키고 있다.

이밖에 전자레인지는 복합적인 자동메뉴를 축소하고 해동 및 데움 등 기본기능을 강화한 10만원대의 신제품들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정수기업체들도 거품을 뺀 실속형 제품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시장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 가정용 정수기시장은 방문판매라는 영업적인 특성 때문에 대다수 2백만원이 넘는 고가 제품이 주류를 이뤄왔으나 최근에는 1백만원대의 보급형 냉온정수기, 기존 정수기와 냉온수기를 결합한 냉온 시스템, 10만∼20만원대의 수도직결식 중공사막 정수기 등 중저가 제품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중소가전업체들은 원가혁신형 제품들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판매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는 한편, 그동안 등한시 해왔던 아이디어 제품을 틈새상품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가정용 이발기나 제빵기, 헤어롤, 헤어컬 등은 호황일 때에는 크게 호응을 받지 못했으나 최근에는 저렴한 비용으로 소비자들이 가정에서 직접 활용할 수 제품들이 각광받는 추세여서 중소업체들도 이에 부응, 틈새시장 개척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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