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경제위기와 정보통신산업

李起鎬 두전컴퓨터 사장

현재의 극심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미국의 뉴딜식이나 영국 대처리즘의 방법, 그리고 미국의 정보통신산업을 중심으로 한 벤처기업의 부흥 등이 그 예다. 이들 방안 중 벤처기업의 육성, 특히 정보통신 분야의 육성에 거는 기대는 매우 크다. 그 이유는 정보통신 분야가 미래산업의 대표주자이며 성장을 약속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통신산업도 비판과 개혁의 소용돌이 안에 있는 한국산업의 한 분야이며 구조조정의 대상이므로 다시 한번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경제위기와 함께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다가오는 교훈 중의 하나는 외형 중심의 경영에서 탈피해 철저한 부가가치 중심의 경영을 통해 경쟁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통신산업에 있어 경쟁력이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상품자체의 경쟁력이며, 다른 하나는 정보통신 상품을 도입한 여타 산업의 경쟁력 향상이다. 다시 말해 전자는 우리의 정보통신 상품이 세계 다른 제품과 경쟁에서 이겨 팔려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후자는 외국에서 도입한 정보통신 상품을 국내 기업들이 잘 활용해 그 효과로 세계의 동종 업체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을 말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흔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첫번째 의미의 경쟁력이며 두번째 의미의 경쟁력은 소홀히 여겨지는 듯하다. 하지만 두번째 의미의 경쟁력 기초 없이는 첫번째 의미의 경쟁력을 육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정보통신산업의 선진국들도 정보통신 상품의 도입을 통해 경쟁력 향상을 경험하고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이제는 커다란 패러다임의 변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국내 시장에서의 효과 검증 없이는 상품 자체의 세계 경쟁력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통신 상품의 도입이 국내 여타 산업의 경쟁력 향상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하는 점에서 커다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보통신에 대한 투자증가가 선진국 기업의 수익증대에 미친 영향에 관한 통계자료를 심심치 않게 접하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정보통신 분야에서 투자의 성공사례를 그리 많이 보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정보통신시스템을 도입한 대부분의 기업과 조직들이 그 효과에 만족한 경우를 찾기 힘들며 심지어 새로 도입한 시스템이 사용되지 않고 사장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현상은 정보통신산업에 있어 성수대교식 부실공사로 비유할 수 있다.

그러면 정보통신산업에서의 부실공사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건설공사에서 흔히 이야기되는 하청고리와 감리의 부재가 여기서도 다시 거론되어야 하니 안타깝다. 정보통신 대기업들은 그들의 외형과 조직력에 의해 수주를 하고 이러한 측면에서 약세인 중소기업들은 인력공급업으로 전략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하청이 반드시 폐해를 가져오는 것만은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각기 고유의 전문영역에서 기술력과 경험을 가지고 협력해 나갈 때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전문화에 기초하여 각각의 기술력과 경험이 축적할 때 진정한 경쟁력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정보통신산업에서는 외부 감리기관의 객관성이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상품 및 시스템을 도입하는 소비자의 기획력과 공급자의 표준화된 사업수행 능력이 문제다. 흔히 유행산업이라 비판받듯이 도입효과에 대한 철저한 분석 없이 수요자들은 각 시기에 유행처럼 번지는 시스템을 도입하려 하고 공급자들을 외국의 유행을 먼저 간파하여 수입하거나 수입 대체시스템을 개발하기에 바쁘다. 시스템 도입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한 진정한 고민과 기획이 전제되었다면 설계와 요구사항의 잦은 변경에 따른 시비도 없었을 것이다. 시스템 공급에 대한 전문성의 축적과 표준화된 구축방법론이 있다면 시스템의 필요사항과 요구사항을 변경 없이 반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기업 자신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어떠한 정보통신 상품을 도입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정한 고민을 시작해야 하며, 이러한 요구에 기초해 상품을 기획, 개발해야 할 시점이다.

또 정보통신산업도 냉철한 자기반성과 함께 구조조정의 긴 터널에 진입해야 한다. 구조조정 대상 계열사 명단에서 정보통신 분야는 언제나 열외되어 있다. 진정 자신의 정보통신 계열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한 기업 내에서도 각 사업분야 중 경쟁력이 없는 것은 철수시켜야 한다. 또 소비자들도 전문화돼야 한다. 부화뇌동식 시스템 도입이 아니라 진정 자기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석, 기획할 수 있도록 전문화돼야 한다.

끝으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벤처기업의 기획력 부도는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벤처라 일컫는 많은 기업들이 무엇을 개발하여 상품화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현실이며, 설사 필요한 상품을 개발했어도 이미 외국에서는 다음 단계의 상품이 개발돼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시의 적절하게 개발된 상품도 마케팅 능력의 부재로 판로를 개척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기술력과 기획력 및 마케팅 능력이 결합될 수 있을 때 우리의 벤처기업들도 현재 그들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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