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부품산업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는 보도다. 기아사태 이후 지금까지 부도가 난 1차 부품업체가 1백여 곳을 웃돌며 부품업계의 공장가동률도 40% 선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그동안 전남 광주와 안산 등 일부 지방에서 일어나던 부도의 회오리 바람이 최근 들어 경상도 일대와 경기 일원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러다간 국내 자동차부품산업이 문자 그대로 와해되지 않을까 크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주력업종의 하나인 자동차업계가 재고부담을 견디다 못해 또 다시 조업단축에 들어가고 자동차부품산업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면 마치 벼랑끝 위기에 직면해 있는 우리 경제의 실상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아 착잡하기 그지없다.
작년 7월에 발생한 기아사태에 이어 불어닥친 사상 초유의 외환위기는 결국 국내 수요의 급랭현상을 초래하면서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및 자동차부품산업의 존립기반을 위협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총 1천1백여개의 1차 부품협력업체 중 이미 1백20여개 업체가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최근에는 매출규모가 5백억원을 웃도는 대형 부품업체들마저 쓰러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되면서 빚어진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경쟁력 약화로 수출물량이 대폭 줄어든데다 IMF사태로 내수시장이 크게 위축돼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등 생산라인의 정상가동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다수 완성차업체가 조업단축에 들어갔으며 일부 차종의 경우 생산라인 가동을 전면 중단하고 있다. 완성차업체의 생산라인 평균 가동률이 한창 때의 40% 선으로 떨어지면서 그 여파로 자동차부품업계의 총매출액도 지난해보다 15% 이상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자동차부품업체들이 부도의 회오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다. 특히 완성차업체 및 1차 벤더가 발행한 진성어음이 은행권에서 할인되지 않는 것이 납품대금을 모두 어음으로 받는 부품업계에 치명적인 타격이 되고 있다. 매월 7개 완성차업체가 1차 벤더에게 발행하는 1조2천억원 규모의 어음과 1차 벤더가 2차 벤더에게 발행하는 6천억원 규모의 어음 등 총 1조8천억원 규모의 막대한 어음이 발행되고 있으나 이 중 일부 대기업 발행 어음을 제외한 대부분의 어음을 금융기관들이 할인을 기피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원자재 가격폭등과 현금결제 요구 그리고 환율상승으로 인한 부담 등이 겹치면서 자동차부품업체의 연쇄도산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원론적으로 따지면 물건이 팔리지 않아 재고가 쌓이면 조업을 단축해야 하고 생산량을 줄이는 것은 당연한 조치이자 순리다.
그러나 문제는 자동차산업의 특수성에 있다. 알려진 대로 자동차는 주요 부품수만도 3천여개에 달하는 대표적인 조립산업으로 전후방 관련산업에 미치는 파장이 엄청나게 크다. 다시 말해 자동차산업이 타격을 받을 경우 완성차업체들은 물론 부품생산을 맡고 있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당장 연쇄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는 점이다.
설사 부도위기까지 가지 않는다 해도 적정생산량 유지가 안되면 규모경제의 미달로 생산원가는 더욱 올라가게 마련이어서 경쟁력을 더욱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수출산업이자 2000년대 주력산업으로 육성해야 할 자동차산업을 회생시킬 수 있는 다각적인 방안을 시급히 강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우리보다 먼저 불황을 겪고 이를 슬기롭게 극복한 일본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일본의 자동차업계는 90년대부터 적극적인 불황극복 전략을 추진해 왔다. 물론 직접적인 이유는 엔고에 따른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지만 세계적 공급과잉에 대비하는 복합처방이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일본의 자동차업계는 해외시장 확보를 위해 생산의 현지화 전략을 과감히 추진하는 한편 생산방식의 재구축을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생산성을 제고시켰을 뿐 아니라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간 수직적 협력은 물론이고 경쟁업체와의 수평적 협력도 활발히 이뤄졌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도 국내업체간 경쟁보다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자동차산업의 경쟁력 제고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아울러 정부 차원에서도 세제 및 금융지원 등 다각적인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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