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해외 진출은 "유행"이 아니다

외환위기가 시작된 이후 극도로 악화된 국내시장을 벗어나 해외진출만이 살 길이라고 너나 없이 외국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정부가 지원에 나선 소프트웨어업체들의 실리콘밸리 진출 외에도 가전업체들이 제품의 현지화를 통한 수출확대를 도모하며 진출국 생산공장에 소규모 연구조직을 묶어 나가고 있다.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이제까지의 단순 장비수출 중계 수준을 벗어나 망 설계기술까지 상품화, 부가가치 높은 수출에 나서고 있다.

대기업들은 개별기업 차원에서 적극적인 해외진출을 모색하고 중소업체들은 형편에 맞춘 동반진출에 기대를 걸고 있다. 정부도 이같은 중소업체들의 해외진출에 적극적인 지원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제까지 어차피 수출로 일으킨 경제이니 그동안에도 해외시장 없이 한국경제를 생각할 수는 없는 처지였다. 다만 작금의 현상은 외환위기 탈출을 위해 붐을 이룬다는 점, 그리고 그동안의 기술성장 결과로 부가가치에 좀 더 비중을 둔 진출이라는 점에서 두드러질 뿐이다.

그러나 현재의 붐이 과연 개별기업의 뚜렷한 목표와 전략을 토대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인지 우려된다. 또 하나의 유행 좇기는 아닌가 한번 더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아울러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해외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에 문제는 없었는지도 검토해 봐야 한다. 해외진출 확대에 앞서 점검해 봐야 할 것도 많다.

우선 국내 기업들은 이제까지 해외시장을 단지 우리 상품을 소비하는 「시장」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상품만 팔면 되던 단계를 벗어나 해외공장을 건설하고 진출하면서부터는 현지에서 좋지 않은 평판을 받으며 문제를 일으킨 예가 적잖았다.

수출입국이라는 기치 아래 외자유치에 첫 걸음을 떼던 60년대에 자유무역지대를 중심으로 진출한 외국 기업들의 오만한 노무관리로 인해 숱한 갈등을 겪었던 기억을 우리는 갖고 있다. 그런 우리가 이같은 기억을 깡그리 지우고 진출국에서 같은 잘못을 답습, 말썽이 심심찮게 일어났던 것이다.

경험처럼 소중한 자산은 없다. 그러나 내가 겪은 불쾌한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고 옳고 그른 것 구분 없이 추종만 한다면 그 경험은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

한국 기업들도 이제 초기에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단순 주문수출만 하던 단계는 벗어난 지 오래됐다. 상대 시장을 향해 적극적인 제안을 할 수 있어야 커진 덩치에 걸맞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남들이 키워 놓은 시장에 숟가락 하나 들고 끼어들기에는 덩치가 너무 커졌다. 시장의 흐름을 바꿀 만한 제안을 하고 시장을 주도해 나가기 위한 공세적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이처럼 변화된 위상에 맞추자면 발상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해외시장을 영원히 「당신들의 천국」으로 남겨둘 생각이 아니라면 세계시장이 곧 「우리 시장」이라는 적극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 시장」의 개념이 서구인들의 식민지 개척시대처럼 침략적 사고로 「내 것은 내거, 네 것도 내거」하는 발상이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광고 카피나 구호를 그렇게 내건다고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고의 밑바닥부터 뒤집어야 한다.

이제 한국적인 것을 자산으로 활용은 하되 인류 보편적 가치에 무게중심을 옮겨 실어야 한다. 흔한 표현대로 진출국을 동반자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애국심보다 인류애가 앞서야 가능하다. 국적을 넘어 모든 근로자는 근로자이기에 앞서 천부인권을 보장받아야 할 소중한 한 인간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발상을 진출기업 스스로 갖고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

또한 현지의 관습이 남다르다 해도 그들의 문화로서 존중해야 한다. 미국인들이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며 숱한 분쟁지역에 출동하고 그로 인해 무수한 자국 젊은이들이 피를 흘렸지만 제3세계에서 미국은 그다지 환영받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현지의 관습에 대한 미국인들의 무지가 오만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는 뚜렷한 목적을 갖고 나가되 현지에 동화돼야 하고 그러면서도 우리의 장점은 적극 살려 나가는 해외진출만이 부작용 없이 성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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