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은 장래를 위한 투자이자 일종의 보험이다. 당장 결실을 맺지는 못하지만 몇 년간 거름을 주고 정성을 다하면 과실이 열리듯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그래서 중장기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경우 후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상속이라고도 한다.
연구개발이 한번 중단되면 다시 활기를 되찾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돈만 주면 살 수 있거나 아무런 기반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개발투자와 연구인력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지금 구조조정이란 명분 아래 많은 기업에서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들이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모 그룹 연구소는 전체 3백여명의 연구인력 중 1백여명만 남기는 최대의 인원감축을 단행했고 또 다른 그룹 역시 30%가 넘는 연구인력을 축소하는 등 연구원들의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졌다. 정부출연 연구소 역시 관계부처가 일률적인 잣대로 감원조치를 취할 움직임이어서 대덕단지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연구개발 투자가 줄어들면서 과학기술 대국이란 명분은 사라지고 이제 이들의 신세가 오갈 데 없는 처지로 전락하고만 것이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60, 70년대 노동력을 시작으로 70, 80년대 설비투자 확대로 이어지면서 아시아의 용으로까지 환대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 기술과 지식이 주도하는 산업구조로의 전환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해 결국 실패한 경제가 돼버렸다. 시대적 흐름에 정부 당국자는 물론 기업 경영진이 제대로 동참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 모든 분야가 어렵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라도 지식과 기술을 기반으로 한 연구개발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90년대 초에 이런 과업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연구개발에 기초한 첨단기술 분야로 산업구조를 돌려야 한다.
미국은 지난 80년대 말 극심한 경제 불황기를 맞은 적이 있다. 당시 기업은 설비투자를 감축할 수밖에 없었고 많은 사람들이 실업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미국정부는 정보화라는 새로운 정책을 내걸고 기업들의 기술개발을 장려했다. 기업 역시 다른 분야에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연구예산은 아끼지 않았으며 연구인력 또한 중시했다. 일본도 불황기에 연구개발을 통해 고도의 기술과 품질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산업구조를 혁신했다.
반면 멕시코의 경우 3년 만에 IMF위기를 극복, 경제는 회복했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낮아진 인건비와 노동집약적 산업에 의존한 양적 확대에 불과한 것이라는 평가를 정부 당국자나 기업 경영진은 숙고해야 한다. 현재 우리 정부와 기업은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있어 장기적으로 멕시코의 패턴을 답습하지 않을지 우려된다. 우리 경제가 1만 달러 이하의 중진국 수준에서 만족하면 몰라도 다가오는 21세기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목표한다면 고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이 되는 연구개발에 투자를 아껴서는 안된다.
현 시점이 아무리 어렵고 큰 고통을 요구할지라도 연구개발 투자란 내일의 희망이다. 따라서 연구개발 투자와 연구인력을 절대 IMF시대의 일률적인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 몇 퍼센트의 연구비를 삭감하라든지 일정 인원을 일괄적으로 줄이라는 식의 획일적인 예산삭감 정책은 국가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일이다.
이들 연구인력에게 특권을 주자는 것은 아니지만 일률적인 부서 통폐합이나 인원감축이 아니라 연구원들의 전문성과 냉혹한 평가제도 도입 등을 통해 이들 스스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꼭 감원이 필요하다면 연구분위기를 저하시키고 연구결과를 내지 못하는 연구직 종사자나 지나치게 많은 행정지원 인력부터 손을 대야 할 것이다.
이제 정부 당국자나 기업 경영진은 훌륭한 실적을 낳은 연구인력과 그 가능성을 긴 안목으로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육성된 전문인력들이 사회에 나가 비전문 분야에서 종사하게 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국가적 손실을 심사숙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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