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전신주

지금은 콘크리트 전봇대에 밀려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거무튀튀한 나무 전봇대는 한때 전기가 들어오는 문명지대의 상징이자 시골아이들의 선망이기까지 했던 시절이 있었다. 너도밤나무를 건류해 만든 크레오소트라는 살충, 방부제를 발라 눈비나 곤충들로부터 안전한 나무 전주는 실은 적지 않은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발명품이기도 했다. 나무 전주 하나를 세우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지금 나무 전주는 과거 회상의 소품으로 전락했고,그 뒤를 이은 콘크리트 전주도 이제는 도시나 자연미관을 해치는 후진국의 상징물이자 일각에서는 일본의 지하 공통관로와 비견되며 정부기관 간의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 따른 비효율의 표본으로까지 거론되는 형편이다. 한국전력의 전주는 과거부터 한전과 중계유선방송 업체들간 마찰의 접점이기도 하다. 중계유선방송 업체들이 대부분 인근 한전주들을 이용해 중계유선망을 구축하기 때문에 한전 측과 실랑이를 벌이기가 일쑤였고, 급기야는 한전 측이 국가기간시설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불법」으로 포설한 케이블을 끊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중계유선방송 업체들은 그때마다 『TV가 나오지 않는다』는 중계유선 시청자들의 불만을 한전 측에 돌리는 전략으로 한전 측을 난처하게 만들어 결국은 한전 측이 눈감아 주는 형태로 유야무야시키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최근 원주 등에서 일고 있는 한전과 중계유선방송 사업자들과의 갈등은 한전이 케이블TV 3분할사업자 가운데 하나인 전송망사업자로서 해당지역 케이블TV 방송국(SO)들과 계약, 케이블TV망 구축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국가적인 투자효율 차원에서 기존 중계유선 시설을 활용해야 한다는 중계유선 측의 주장도,자신들의 시설물에 「기생」하는 「불법시설물」을 철거하라는 한전 측의 요구도 모두 타당해 보인다. 이같은 갈등은 『근본적으로 3년 전 케이블TV산업 태동시 정부가 기존의 중계유선을 무시한 채 인위적인 판을 짰기 때문으로, 새 방송법 밖에는 해법이 없다』는 지적이 높다. 이래저래 새 방송법에 대한 기대치와 이로 인한 당국의 부담은 커져만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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