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목표 달성을 위한 전자업계의 과당경쟁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전자업계가 내수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수출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출혈경쟁으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할 만한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미 다른 업체와 거래를 하고 있는 바이어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수출가격을 20∼30%까지 낮춰 공급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수출은 늘어나도 채산성은 오히려 떨어져 공멸을 자초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을까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바이어들도 이같은 국내 업체들의 경쟁심리를 교묘히 이용해 가격경쟁을 부추기고 있어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업계가 스스로 조정력을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처럼 최근 들어 국내 가전업체 간의 과당경쟁이 늘고 있는 것은 국내 업체들이 수출목표를 갑자기 크게 늘려잡아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를 단시일 내에 달성하기가 어려운데다 국산 제품을 찾는 소비자층이 한정돼 해외시장을 독자적으로 개척하기보다는 국내 업체들의 기존 거래처를 공략하는 것이 단기간에 큰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말하자면 우선 먹기는 곶감이 좋다는 발상이다.
수출은 올 들어 전년 동기 대비 평균 20∼30%에 달하는 등 호조를 누리고 있는 것과 대조로 내수는 전년 동기의 70% 수준을 밑돌고 있어 수출과 내수가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는 것도 수출부문에서의 과열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 내수를 전년 대비 70% 선으로 낮춰 잡았지만 이 목표조차 달성하기 어려운 실정인데다 목표달성률이 아닌 수익성을 전제로 평가한다면 그나마 보나마나한 것 아니냐는 전자업계 사업부서 관계자들의 자조섞인 전망 속에도 이같은 심각한 상황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그동안 수년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어렵사리 협력관계를 구축해 놓은 수출처를 국내 경쟁사에 빼앗기거나 바이어들의 요구대로 가격을 인하해 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국내 업체끼리의 해외 거래처 빼앗기 경쟁은 비단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더 좋은 가격조건을 제시해 거래처를 빼앗는 사례는 기존에도 종종 있었으나 내수와 수출이 함께 잘 되던 그때와 내수가 바닥권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야말로 수출에 사운을 걸어야 하는 지금은 사정이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다.
물론 시장을 지배하는 법칙은 「경쟁의 원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국내 업체들의 해외시장에서의 일정한 경쟁은 상호 긴장과 자극을 주고 받는다는 점에서는 일면 긍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나, 각사가 이미 확보한 거래처를 채가는 형식으로 상도의를 벗어난 과당경쟁을 일삼는다면 이는 개별 기업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입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해외 거래처에만 이익이 돌아가는 국내 업체간의 과당경쟁은 근절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수출에 사활을 걸 정도로 악화한 현재의 기업구조로 보면 단순히 자제하라고 권유해서 될 일만은 아니라고 본다.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게 전자업계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국가적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만난을 무릅쓰고서라도 수출확대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지나친 수출경쟁으로 기존 시장질서를 왜곡시키고 한국산 제품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단순 계량적인 수출확대 전략은 이제는 조용한 가운데서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전자업체들의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전략이 국내 전자산업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제살깎기식 과당경쟁으로 변질된다면 IMF체제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기는커녕 오히려 또다른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 할 것이다.
정부의 수출확대 전략도 공정경쟁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질적 개선을 도모해야 한다. 공정경쟁은 서로의 경쟁력을 키워주는 시너지 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과당경쟁을 근절시키려는 정부의 역할과 노력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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