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사람끼리 주고받는 게 명함이다. 대부분의 명함은 종이의 질이나 모양, 인쇄방법 등이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내용은 비슷하다. 소속회사, 이름, 직함, 연락처 등이 적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미국사람의 명함은 우리의 명함과 좀 다르다. 미국사람의 명함을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특히 최근 미국에는 직함이 없는 명함이 등장하고 있다. 미국 경제뉴스 전문통신사인 블룸버그는 직원의 명함에 이름과 전화번호만 기재토록 하는 등 직함파괴를 했다. 직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는 게 이 회사의 방침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의 명함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보다는 얼마나 높은 사람인가가 우선적으로 명시돼 있다. 고위직일 경우에는 대부분 이름 앞에 직함이 기재되어 있다. 한마디로 미국 사람들의 명함은 실제에 비중을 둔다면 우리나라는 직위에 더 큰 비중을 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명예에 집착하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벼슬을 사거나 세도가에 붙어 벼슬자리를 얻으려는 몸부림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한번 얻은 벼슬은 그것이 단 하루만의 벼슬일지라도 참판댁이니 진사댁이니 죽은 뒤까지 그 벼슬이 따라다니며 후손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새 정부 들어 그룹이 해체되면서 대기업 총수들의 직함이 핵심계열사 대표이사 등으로 바뀌고 있다.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은 최근 새로 만든 명함의 직함을 「현대 경영자협의회 회장」 으로 바꿨고, 「삼성 회장」 「이건희」 「한국IOC 위원장」 등의 직함을 사용하고 있는 이건희 삼성 회장은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이라는 별도의 명함을 마련할 계획으로 있다고 한다. 그룹 회장들의 직함이 바뀌는 것은 모두 그룹 기조실을 해체하고 최고경영자의 경영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총수들이 주력사의 대표이사나 이사로 등재했기 때문이다.
지금 기업들에게 닥친 절체절명의 과제는 총수들의 직함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IMF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총수의 직함 변경과 그룹 전체에 대한 영향력 행사, 경영책임에 대해 논하는 것은 한가로운 일이다. 그룹 회장이든 대표이사 회장이든 회장을 중심으로 기업이나 나라가 IMF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에 매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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