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成哲 LG종합기술원 커뮤니카토피아연구소 책임연구원
지난해 말 금융난을 시작으로 우리나라를 강타하고 있는 IMF구제금융체제는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의 여러 측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다른 분야는 몰라도 경제만큼은 지속적인 고성장, 확대 일변도를 걸어 왔건만 별 심각한 문제가 아닌 듯 이야기되던 환율폭등은 급기야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구조재조정이란 돌풍을 일으키고 있고 이에 따라 우리들의 생활도 저성장, 축소로 적응시켜야만 하는 아픔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90년 이래 일세를 풍미하던 정보화나 정보사회와 관련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일순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 정보화야말로 산업사회의 한계를 벗어나려는 지구적인 대세인 동시에 우리나라에서도 21세기 경쟁우위 전략으로 국가적인 목표로 채택되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전국민의 시선이나 관심은 장기적인 정보화의 비전보다는 현재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몸조심하며 벗어날 수 있을까로 집중되고 있는 형편이며 또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된다. 직장에서 『퇴근길에 맥주나 한 잔 합시다』라는 제안은 사라진 지 오래고, 회식자리에서 삼겹살이라도 구울 수 있으면 다행한 처지다. 주위에 들리는 것은 온통 부도뿐이고 집안마다 한두 명쯤은 지난 연말 이후 일자리를 잃는 등 전국민이 위축될 대로 위축되어 있어서, 직장에 다니는 사람조차 과연 내 자리가 안전한가를 걱정하며 제대로 숨도 못 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연유로 대다수 국민은 발빠른 미디어의 캠페인에 동참하여 아기 돌반지를 갖다내라면 갖다내고, 집에서 형광등 하나를 덜 켜자면 덜 켜고, 수입품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식으로 고통을 분담하며 국가적인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근검도 좋고 절약도 좋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IMF체제라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가 현실로 다가온 지금, 더군다나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있는 이 시점에 지난 60년대 처음 공장을 세우고 수출 드라이브를 걸던 그 때 그 시절의 전략만으로 충분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가 놓인 상황이란 것이 별다른 자원도 없고, 또 중국이나 다른 후발주자들의 도전도 거세어질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비용절감에 의한 가격경쟁만으로 지금까지와 같은 지속적인 성공이 있을지도 불명확한 일이고, 그렇다면 또다시 제2의 위기가 오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는 것이다.
일전에 한국맥킨지에서 우리나라의 산업구조조정과 관련하여 3개의 시나리오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현재 우리나라가 취할 수 있는 방향은 대략 과거지향적, 폐쇄적인 방식과, 현재 우리나라의 경쟁우위 분야인 제조업, 서비스업 중심의 구조조정, 제조업, 서비스업에 정보통신 분야까지를 고려한 전면적인 구조조정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 중에 우리가 가장 택하기 쉬운 두번째 방향이 가장 나쁜 시나리오로 향후의 경제성장은 더욱 둔화되고 실업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것이다.
반면 세번째 방향이 구조조정의 고통은 가장 크지만 장기적으로 우리나라를 다시 살릴 수 있는 방향이라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금과 같이 고통스러운 상황이 바로 정보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우리들이 그간 가지고 있던 정보화의 목표는 무엇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종합정보통신망(ISDN) 같은 네트워크나 이러한 망을 이용해서 가능한 서비스가 무엇일까를 생각하는 등 하드웨어 중심으로 생각한 것이 아닌가. 이런 연유로 네트워크 상에서 돌아다녀야 하는 콘텐츠의 개발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미미한 수준밖에는 안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비유해서 이야기하자면 위와 같이 하드웨어 중심으로 제시된 목표는 마치 도로를 닦으면 자동차가 다닌다는 논리로 어느 지역에 먼저 도로를 닦아놓고 그 도로에 승용차를 다니게 할까 트럭을 다니게 할까를 생각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즉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과 관련한 필요성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은 계획이기에 어쩌면 주민들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할 우려도 있고 어쩌면 실어 나를 것이 없기에 전혀 자동차가 다니지 않을 우려도 있는 것이다.
정보화의 비전을 처음부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것도 비슷한 논리라고 할 수 있겠다. 쉽지는 않겠지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과연 정보사회에서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생활할 것인지, 또 사회는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예측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이런 연구가 일부 수행돼 오기는 했지만 아직은 풍부하고 구체적인 자료를 제공할 수 있을 만큼 진전되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어떻게 보면 정보화와 관련해 가장 선행되어야 할 연구가 미루어져 왔던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사회나 생활변화를 고려해야 앞으로 정보통신산업 분야에서 사용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도출할 수 있으며 이를 근거해야만 정보화의 목표를 바로 세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또한 이런 과정을 밟아서 비전을 제시해야 21세기 정보사회에서 경쟁력을 쌓아갈 수 있을 것이고 이는 곧 우리 기업이나 국가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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