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근시안적인 기업 구조조정은 안된다

국내 거의 모든 산업이 본격적인 구조전환기에 돌입했다. 전자나 자동차 등 간판산업이 장기적인 불황에 돌입했으며 정부가 외환위기 타개를 위해 재계에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재벌 기업들은 몇 개의 주력업체를 선정한 데 이어 회장실, 비서실 또는 종합기획실 등을 속속 폐쇄, 그룹의 연결고리를 끊어 산업 판도가 변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는 뒤늦게 문호를 개방했지만 선진국의 자본, 기술을 도입, 단기간에 큰 산업 발전을 이뤄냈다. 특히 전자를 비롯한 철강, 조선, 자동차 등 중추산업을 육성, 개도국으로서는 드물게 경제를 선진화시켰다. 이를 뒷받침한 균형성장 정책은 얼마 전까지는 주효했다. 그러나 선진국의 무역 개방, 자유화와 후진국의 맹렬한 추격으로 우리의 산업은 더 이상 성장을 지속하기 어려운 한계상황에 처했다.

특히 최근 우리는 사상 유례없는 외환위기에 처해 거의 모든 산업이 혼돈의 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의 외환위기는 금융구조의 낙후성에 근본 원인이 있지만 산업의 장기적 부진으로 인한 불황과 무관하지 않다. 불황은 또 경쟁력 약화와 거품 붕괴가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본은 통화의 감소→디플레이션 진행→지속적인 금리 상승→투자 감소→불황 장기화의 패턴을 보여주고 있는데 우리가 이것을 따르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러한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 기업의 개혁과 구조조정은 분명 소망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현재 기업들이 실시하고 있는 구조조정을 보면 원칙도 방향도 없는 것 같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지향점을 잃고 손발만 허우적거리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우리의 중추산업인 자동차, 전자 분야는 더욱 심한 것 같다. 부실한 한 자동차업체를 구제하기 위해 국내외 업체에 인수시켜려 하고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자동차산업의 구도는 예측하기조차 어렵게 됐다.

삼성, LG, 현대, 대우 등 대부분의 그룹들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충족시키기 위해 장기적으로 적지 않은 계열업체를 사실상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장래성이 밝을 것으로 보이는 정보통신 분야는 거의 모든 기업체들이 보듬고 나가고 있는 반면 장기적인 투자를 필요로 하거나 위험부담이 큰 사업은 대부분 주력 업종에서 제외됐다. 특히 우려스러운 점은 산업의 쌀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성이 큰 반도체 분야를 빅딜의 대상으로 삼더니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부 자동차업체 인수의 희생양으로 쓰려고 한다는 소문까지 들린다.

재계에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정부도 최근까지도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마련하지 못한 채 기업들에 구조조정을 하라며 등을 떠밀고 있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정부의 개혁정책에 떠밀려 마지못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업체들은 더 큰 문제다. 기업체들은 구조조정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주력사업 선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미래의 비전보다는 현재 덩치가 크고 이익이 나는 업체들을 주력사업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분명 근시안적인 행태다. 기업체들이 주력사업으로 선정한 것들은 이제 이미 전통산업이 돼버린 것으로 우리가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할 미래 유망사업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다. 미래 유망사업은 부가가치가 높고 기술 발전추세가 빠르며 특히 인간의 기능과 감각이 결집돼 차별화된 산업이다. 따라서 기업체들의 단기적인 안목으로 조정된 기업구조는 앞으로 제2의 주력사업 선정이 필요한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기업체들에는 그룹의 전체적인 시각에서 사업을 기획 조정할 수 있는 기조실이나 비서실이 폐지돼 그룹이 조화롭게 기업체들을 배치시키기는 어렵게 됐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있어서 정부 또한 기업체에 사사건건 사업을 강제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현재 가장 절실한 것은 산업구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것이다. 진정 유망한 사업은 무엇인지를 밝혀내고 그러한 바탕에서 우리는 산업구조를 어떻게 가져가야하는지에 대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단순히 정보통신산업이 유망하다고 하니 너나없이 이 분야만 붙드는 것은 결국 공멸하는 길이다. 정부와 기업은 우리가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업종에 착안, 그것을 육성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강한 경쟁력을 갖춘 기업과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기업의 구조조정은 올바르게 실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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