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누구에게나 삶이란 그리 녹녹하거나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그래도 삶을 지치지 않게 만드는 것은 「이보다 더 나은 삶이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 때문이다. 그 희망의 정점은 과연 무엇일까.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마음의 벽을 허물고 다가서는 나눔과 사랑을 그 해답으로 제시한다.

제임스 L 브룩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이 장르가 지니는 고전적인 장점을 답습하지만 감독의 재기발랄함과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가 멋진 조화를 이루며 빛을 발한다. 골든글로브에 이어 아카데미를 거머쥠으로써 「타이타닉」의 독식을 막았던 잭 니콜슨과 헬렌 헌트의 연기를 통해 일상성에서 빚어내는 섬세한 유머감각은 압권이다. 우디 알렌의 로맨틱 코미디가 지적이고 현란한 대사와 유머의 코드로 가득 차 있다면 제임스 L 브룩스의 로맨틱 코미디는 훨씬 더 관객에게 친절하다. 때로 유치한 감상주의가 엿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편안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극심한 강박증에 걸린 로맨스 소설작가 멜빈 유달(잭 니콜슨 분). 철저하게 타인과의 벽을 쌓고 사는 그는 거침없는 독설과 자기밖에 모르는 극단적인 이기심으로 무장되어 있는 인물이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레스토랑, 같은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해야하는 그의 비위를 그나마 맞춰주는 유일한 사람은 웨이트리스 캐롤(헬렌 헌트 분). 천식에 걸려 고생하는 아들과 어머니와 함께 사는 그녀는 매력적이긴 하지만 삶에 시달려 변변한 데이트 한번 마음대로 즐길 수 없다.

멜빈의 신경을 자극하는 또 다른 인물은 그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게이 화가 사이먼(그렉 키니어 분)과 그가 애지중지하는 애완견 바델이다. 어머니의 누드를 그린 일로 인해 아버지와 사이가 나빠진 사이먼은 개인전이 실패하고 강도까지 당해 빈털터리가 된다.

이 세 주인공들은 저마다 각기 색깔이 다르긴 하지만 또다른 희망을 꿈꾸며 살기엔 이미 지쳐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이들이 만나 사랑을 발견하고, 재기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시체가 썩고 있어도 결코 노크하지 말라』는 으름장에도 불구, 어느날 멜빈은 반강제로 바델을 맡아 기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던 이 개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점차 깨닫게 된다. 그 방법은 몇번의 실수를 거듭하면서 캐롤과 아름다운 로맨스를 만들어가고 멜빈을 세상사람들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제 환갑의 나이에 접어든 잭 니콜슨의 마성적인 매력과 배우로서의 무게감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엄용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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