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위기 이후 하루에도 몇백개의 업체가 부도를 겪는 가운데 최근 중소가전업체들도 이같은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IMF가 시작된 지난해말부터 올 2월까지만 해도 벌써 명성가전, 선보정밀, 대고전자 등 굵직한 중소가전업체들이 잇따라 부도를 냈다. 이들은 비록 소비자들에게는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동안 가전3사와 동양매직 등에 소형가전제품을 OEM공급하면서 기술력과 신용도를 인정받아 우수협력업체로 선정되기도 했기 때문에 지난 11월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IMF위기가 몰아닥치면서 금융시장이 경색되고 자금운영이 막혀버린 가운데 주요 공급처인 가전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내세워 협력관계를 급작스레 단절하자 결국 자금력이 약한 업체들은 손 쓸 틈도 없이 차례로 부도를 맞게 된 것이다.
명성가전의 경우 70년초 설립돼 삼성전자에 금형, 사출 등 부품을 공급해오다 우수협력업체로 선정되면서 88년부터는 식기건조기, 주서믹서 등 소형가전제품을 공급하면서 성장해왔다. 이 업체는 96년에는 연간 80억원 어치의 물량을 공급하면서 삼성전자의 주요 협력업체로 자리잡았지만 지난해 12월초 삼성측이 소형가전사업을 한일가전으로 이관하면서 급작스럽게 협력관계 단절을 통보하면서 별다른 대책 마련도 해보지 못하고 두달도 채 되지 않은 지난 2월 중순 부도를 냈다.
문제는 이런 경우가 명성가전, 선보정밀, 대고전자 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부도는 나지 않았지만 이미 우림전자는 삼성에 공급하던 물량이 줄어들고 자체 상황이 나빠지자 내수용으로 생산했던 품목을 대다수 단종하면서 수출로 돌아섰으며 라니산업도 삼성과의 가스오븐레인지 OEM공급 추진이 중단되면서 아예 자체 사업을 포기하고 린나이코리아에 흡수, 통합됐다.
남아있는 중소가전 제조업체들도 시급히 판로를 확보하거나 수출처를 뚫는 등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자금난으로 많은 비용을 들여 개발해놓은 금형에서부터 부품, 원자재까지 그대로 떠안고 부도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있다. 더욱이 중소가전업체들은 다품종 소량생산 위주의 생산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전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해당기업의 문제로만 보고 있지 않다. 이런식으로 가다가는 국내 제조산업의 기반이 없어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IMF시기에 이렇게 중소가전업체가 속속 문을 닫는다면 IMF가 끝나는 시점에서 다시 수요가 확산될 때에는 국산 소형가전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볼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지적이다. 지난 96년 유통시장이 개방되기 시작했던 때보다 더 급격하게 수입품이 밀려와 시장자체를 송두리째 내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중소가전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중소기업지원책이 제대로 적용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조사에 따른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 꼭 필요한 업체들에 시행돼야 한다』며 『이와 더불어 중소업체들도 품목별로 컨소시엄을 구성하거나 공동 유통망을 개척하는 등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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