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출 드라이브도 "실속" 있어야

온 나라가 단돈 1달러라도 더 벌기 위해 수출에 모든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최근의 최대관심은 어느 기업이 얼마만큼을 수출했는가 하는데 쏠려 있다. 국가적인 경제위기에서 수출이 마치 지상과제처럼 인식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수출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전자업계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국내 전자산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 종합전자 3사를 비롯해 크고 작은 중견 전자업체들이 예년에 비해 20∼30% 정도 수출목표를 올려잡고 대대적인 수출드라이브 전략을 전개하면서 IMF위기를 수출로 타개하려는 국민적인 열망에 부응해가고 있다.

최근 관계기관이 잠정집계한 올들어 2월말 현재 전자제품 수출이 목표를 초과 달성한 것으로 나타나자 국내 전자업체들은 현재 추세로하면 다소 과도하게 책정했던 올해 수출목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다소 성급한 전망과 함께 하면 된다라는 자신감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전자업체들의 이같은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전략이 장기적으로는 국내 전자산업의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국내 전자업체들이 과거 내수시장에서 자주 사용했던 밀어내기식 공급경쟁이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타고 수출분야에서까지 재연되면서 여러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가장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수출대상국 현지업체들의 한국산 전자제품에 대한 견제 움직임이다. 미국, 유럽, 중남미 등 주요 수출대상국 현지업체들이 환율인상으로 국제경쟁력이 높아진 한국산 제품의 대량유입을 저지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으며 이같은 움직임은 정부 차원으로 더욱 확산될 조짐이라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현지 조직망 보고에 따르면 콜롬비아의 경우 대외통상부 장관이 수입업계 대표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공공연히 한국산 전자제품 및 자동차 등의 수입 자제를 요청했으며 콜롬비아 정부는 오는 5월 대통령 선거를 겨냥해 긴급 수입제한 조치를 단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중남미 국가의 언론들이 「아시아의 침략」이라는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한국상품 배척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정보도 흘러나오고 있다.

선진국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미국 및 유럽 등 일부 국가에서는 최근 한국 업체에게 유리한 판결이 내려지고 있는 반덤핑 조사에 대한 최종판정을 유보 또는 보류하는 쪽으로 당국에 압력을 가하는 등 한국산 제품의 수입감시 활동을 크게 강화하고 있다.

또한 국내업체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자가브랜드나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을 가리지 않는 물량 수주전이 과열경쟁으로 치달으면서 수출 채산성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특히 일부 해외 바이어들이 국내 업체들간의 이같은 과당경쟁을 수출가격 인하수단으로 악용하고 있으며 내수 부진만회와 수출실적 달성에 급급한 국내업체들로서는 알면서도 이러한 농간에 말려들 소지가 높다는 점 등은 앞으로 대책을 강구해야 할 새로운 현안이다.

또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게 전자업계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하지만 결코 이같은 수출방식으로는 우리가 바라는 IMF위기의 극복은 커녕 오히려 증상을 더욱 심화시키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국내 전자업체들이 무리한 밀어내기식 수출경쟁으로 해외시장에서 과당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그동안 쌓아올린 국산 전자제품에 대한 이미지를 스스로 추락시키고 나아가 수출대상국으로부터 부당한 수입규제를 자초하며 또 이것은 장기적으로 국산 제품이 세계시장에서 설자리를 잃게 되는 큰 우를 범하게 된다는 점에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국가적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만난을 무릅쓰고서라도 수출확대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지나친 수출경쟁으로 기존의 시장질서를 왜곡시키고 한국산 제품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는 단순 계량적인 수출확대 전략은 이제는 조용한 가운데서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바꾸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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