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생각]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

『진짜 무료입니까? 교재 값을 따로 받는 것은 아닙니까? 왜 교수님들이 이런 일을 하시는 거죠?』

지난 5일부터 8일까지 나흘동안 여의도 중소기업 종합전시장에서 열린 제1회 직업훈련박람회에서 대학산업기술지원단이 설치한 「캠퍼스 기술재무장관」에 문의를 해온 많은 사람들의 얘기다.

「캠퍼스 기술재무장」은 대학산업기술지원단이 실직자들의 재취업을 돕기 위해 도입한 담임교수제와 같은 것으로 전국 91개 대학의 지원단 소속 교수 1천6백5명 중 해당분야의 대학교수를 실직자와 연계하는 것이 주내용이다. 담임교수로서 재취업 때까지 실직자의 자격증 취득을 도와주기도 하고 연구실의 실험장비를 이용, 대학생들과 함께 가시적 연구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등 소위 가정교사처럼 지도를 하겠다고 대학교수들이 자청하고 나선 프로그램이다.

IMF로 인한 오늘의 대량 실직사태가 산업기술력 낙후에 근본원인이 있으며 그 책임 한가운데에 우리나라 박사급 전문인력의 78%를 차지하는 대학 교수들이 있었다는 자성이 이같은 시도를 하게 된 배경이다. 어떤 의미에서건 IMF 희생자일 수밖에 없는 오늘의 실직자들에게 대학의 잠재력을 총동원, 재취업까지의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켜보고자 한 사업이었다.

종합전시장에는 정부와 민간단체를 비롯해 각 대학의 기술재무장 지원 교육프로그램이 1백개 이상 선보였다. 모여드는 인파는 IMF를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했고 특히 수많은 젊은이들이 취업을 위해 이 곳에 몰려온 것은 놀라움과 걱정을 앞서게 했다. 아내와 아이의 손을 잡고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을 보며 이들이 얼마나 오랜기간을 헤매다녀야 하는가를 생각하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얼마 전 택시를 타고 골목길로 들어가자고 한 적이 있다. 내릴 때가 되자 그 기사는 골목골목까지 택시를 타고다니니 IMF가 온 것 아니냐며 나를 훈계했다. 그 택시기사는 지하철을 타지 않고 자신의 택시를 타는 나를 보고 거품을 빼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어제는 학교 앞의 골목길에서 갑자기 경찰이 나타나 안전띠를 매지 않았다고 3만원짜리 딱지를 부과했다. 고속도로 입구라면 몰라도 그 좁고 복잡한 골목길에 갑자기 나타난 경찰은 진정 나의 안전을 걱정한 것일까.

우리가 왜 IMF를 맞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주려는 사람도 없지만 알고 싶지도 않다. 이런건 그저 높은 데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같이 피부를 맞대고 사는 이웃과 나의 행복이다. 얼마 전 골목까지 들어왔다고 나에게 핀잔을 준 택시기사는 이익만 나는 구간을 운행해 분명 남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것이다. 골목길에서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고 딱지를 땐 경찰관도 자신에게 주어진 할당량을 잘 채워 경찰서장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속이 상한다.

택시란 원래 손님이 원하는 곳까지 모셔주는 것이 임무다. 경찰은 또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다. 너무도 오랜 동안을 우리는 우리끼리의 경쟁에 젖어왔다. 모름지기 택시기사와 경찰은 돈을 못벌고 진급이 안되더라도 더불어 살아야만 하는 시민의 속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

그날 담임교수의 인계를 받기 위해 대기중이던 교수들이 실직자들로부터 앞서의 질문을 받게 된 이유를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날 종합전시장에 펼쳐진 화려한 프로그램들은 실직자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주최자인 정부와 민간단체, 그리고 대학을 위한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일요일에도 아무런 보상없이 실직자들을 연계하기 위해 상담을 대기중이던 교수들이 진정 딴 나라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우리는 종합전시장에서 나흘동안 속이 상한 실직자들을 만나야만 했다. 오늘의 IMF위기극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이웃과 더불어 같이 잘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순번을 정해가며 실직자들과 상담을 해왔던 24명의 교수들은 진정 IMF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대학이 해야 할 일을 찾은 듯했다.

<주승기 대학산업기술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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