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이 늦다」 「아이디어가 없다」 「젊은 소비층의 니즈파악이 어렵다」 「적당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새로운 시도가 없다」 「매출의 질보다는 양을 중요시한다」
국내 대기업들이 앓고 있는 「대기업병」의 증세다.
이 병은 전염성이 강해 기업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다. 최근 우리나라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도 이같은 대기업병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근 정보통신업계에서는 이 병의 치료약으로 「사내벤처제」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사내 벤처제란 일종의 기업내 벤처창업 지원제도. 회사에 종사하고 있는 임직원들이 회사에 아이디어나 새로운 사업을 제안해 타당성을 인정받으면 회사로부터 자금 등의 지원을 받아 별도의 사업부서 또는 법인을 설립해 독립적인 경영을 하게 된다.
이 제도가 활성화되면 그동안 대기업의 단점으로 지적돼 왔던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우선 사내에 묻혀 있던 유능한 인재를 발굴할 수 있고 사원들의 창의성과 자발성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것도 가능하다. 또 인터넷, 콘텐츠사업, 엔터테인먼트 등 아이디어의 중요성이 크면서도 기술발전이 빠른 신규 분야에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뿐만 아니라 빠른 의사결정으로 변화하는 시장상황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는 점도 사내 벤처제도의 특징이다.
외국의 경우 3M, IBM 등 다국적 기업들이 일찍부터 이 제도를 도입해 성공을 거뒀으며 일본도 최근 사내 벤처제도가 활기를 띠고 있는 추세다.
최근에는 국내 기업들도 이같은 장점을 인식, 최근 잇따라 사내 벤처제도를 신설하면서 보다 많은 사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LG그룹은 그룹차원에서 사내 벤처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는 별도법인, 사내기업형, 사업제안형 등 다양한 사업형태로 사내 벤처의 설립을 지원하고 성과에 따라 배당과 자본 이득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LG그룹은 총 51개의 사업제안서 중 첫 프로젝트로 영상회의시스템을 통해 교육사업을 하는 「메카」와 「교통정보팀」을 선정했으며 이 중 교통정보팀은 지난해 12월 자본금 20억원의 독립법인으로 출범했다.
삼성SDS는 지난해 10월 「사내 벤처포트」 제도를 신설하고 「네이버」와 「사이버쇼핑몰」 「멀티미디어 디자인」 등 3개의 사내 벤처를 출범시켰다. 사내 벤처에 소속된 직원들은 매년 경영평가를 실시해 전원 연봉제를 적용받고 사업성과에 따라 일정 부분의 인센티브를 지급받는다. 또 사내 관련 사업책임자가 사업에 적당한 영업자문과 실제적인 사업지원을 하는 경영스폰서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데이콤도 사내 벤처를 우대하는 「소사장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 제도로 「빌테크」 「다물」 「인터파크」 등의 팀이 구성됐으며 이 중 「빌테크」와 「인터파크」는 최근 각각 자본금 10억원과 12억원의 독립법인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데이콤은 또 최근 인수한 심마니서비스도 벤처적인 특성을 유지하기 위해 독립법인으로 설립해 별도 운영할 방침이다.
쌍용정보통신은 사내 제안제도를 통해 차량항법시스템 사업을 수행하는 신사업개발팀을 만들었으며 최근에는 이 팀의 이름을 TTS팀으로 확정, 정식 출범시켰다.
코오롱정보통신 역시 지난해부터 「사내 창업가제도」를 실시하기로 하고 운영기금으로 10억여원을 배정했다. 코오롱은 사내 벤처로 승인이 나면 심사결과에 따라 1억원에서 5억원까지 창업 자본금을 지원하고 독자적인 경영과 조직운영을 보장한다는 방침이다.
이외에 현대정보기술도 지난해 10월 사내 기업가 제도를 신설, 사업제안을 공모했으며 이를 통해 접수된 신규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기업들이 사내 벤처제도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대기업으로서는 뛰어들기 힘든 시장에 과감히 뛰어들 수 있기 때문. 또 일반 벤처기업들보다 성공확률이 높다는 점도 주요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사내 벤처로 출발해 최근 독립법인이 된 데이콤인터파크의 이기형 사장은 『사내 벤처는 제안자의 자발성을 최대한 이끌어내면서도 안정된 자본이 결합돼 기술이나 아이디어만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일반 벤처회사들보다 성공확률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
『자금은 물론 시설이나 인력 등 모회사의 많은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또 모기업이 있기 때문에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벤처기업보다는 월등한 「브랜드파워」를 가질 수 있지요.』
LG그룹의 사내벤처인 LG교통정보 박종헌 사장의 말이다.
그러나 좋은 제도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의 정착을 낙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많다.
『사내 벤처라면 마땅히 벤처로서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기업의 관료적 풍토에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율성이 완전히 보장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기업에서 「관리」를 하려 들기 때문이지요.』
한 사내벤처 담당자의 말이다.
인센티브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도 많다. 「벤처」라면 성공에 대한 보상도 남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몇 단계 특진이나 약간의 보너스만으로는 정말 가치있는 사업을 발굴하기 어렵습니다. 인센티브 외에 스톡옵션이나 주식 배분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과감하게 도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같은 문제 때문에 직원들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제안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 내느니 내가 직접 하겠다는 사람도 많다. 실제로 사내 제안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기업들 중에서는 신통한 제안이 없어 거의 이 제도가 유명무실화되고 있는 곳도 많다.
최근 대기업들은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다. 실속없이 몸집만 불려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같은 때일수록 코스트를 줄이기 위해 무분별한 살빼기에 나설 것이 아니라 전략적인 감량에 나서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대기업의 사내 벤처는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새로운 벤처비즈니스 모델임에 틀림없으며,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새로운 관리기법 개발과 제도의 정착에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할 때다.
<장윤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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