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기회다.」
IMF의 구제금융 여파로 국가 경제위기가 전산업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오디오 업체들은 이같은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고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한 사업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오디오의 경우 다른 가전제품과 달리 생필품이 아닌 관계로 경기 침체 때 가장 먼저 판매가 부진하고 경기가 상승하더라도 가장 늦게 시장이 활성화한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때문에 최근들어 오디오업계의 매출부진은 다른 가전분야보다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지난 1월과 2월 소비자들의 오디오 수요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0% 이상 감소하는 등 경기침체로 인한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오디오시장의 규모도 해마다 줄고 있다. 95년 국내 업체들의 오디오 매출은 6천억원이었으나 96년에는 5천1백억원, 97년에는 4천8백억원으로 줄었으며 올해에는 IMF 한파까지 겹쳐 지난해보다 20% 줄어든 3천9백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현재의 상황이 어렵지만 오디오 업체들은 이를 단지 위기로만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이를 발판으로 삼아 국내외에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오디오업체들은 우선 올해 내수매출이 지난해보다 20% 이상 줄어들 것에 대비하기 위해 수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지난해와 비슷한 물량을 수출하더라도 환차익으로 인한 이득이 내수시장의 부진을 충분히 상쇄시킬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게다가 원화의 가치하락으로 과거보다 국산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해외 바이어들이 국산 오디오를 공급받기 위해 줄줄이 입국하고 있어 이를 잘 활용하면 오히려 전체 매출은 지난해보다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볼 때 국내업체들의 오디오 생산기술 능력은 일본 다음으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생산비용이 품질에 비해 가격이 비싸 해외 바이어들은 중저가 오디오나 카세트류 등은 국내보다 인건비가 싼 중국과 동남아시아국가들로부터 공급받았으며 이들이 생산할 수 없는 고가제품들만 국내업체들로부터 공급받았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은 올해 초부터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제 해외 바이어들은 고성능 미니컴포넌트, AV리시버앰프 등 고가제품뿐 아니라 중저가의 보급형 오디오들도 국내업체들에 생산을 의뢰하고 있어 한국은 이제 세계적인 오디오 수출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역시 경제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어 바이어들이 이들 국가의 업체들과 지속적인 거래유지에 불안감을 갖기 시작한데다 우리나라의 경우 새 정부 출범 이후 IMF 극복에 국력을 모으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의 위기관리 능력이 동남아 국가보다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업체들은 올해 수출목표를 지난해보다 50% 이상씩 늘려잡고 해외영업에 주력하고 있다.
오디오 업체들의 국내 영업전략도 크게 변하고 있다. 오디오업체들은 1인당 GNP가 과거 1만달러였던 시절에서 IMF의 구제금융 이후 6천달러 수준으로 떨어져 소비자들의 구매력도 크게 줄었다고 보고 6천달러 소득의 소비자 수준에 맞춘 절약형 오디오를 잇따라 개발하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기존 제품에 있었던 불필요한 기능들을 모두 빼고 소비자들이 꼭 필요로 하는 기능만 채용한 제품을 만들겠다는 방향으로 주요업체들의 상품기획 방향이 바뀌고 있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또한 과거에는 소비자들의 의견보다 개발자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돼 제품이 개발됐으나 이제는 시제품을 개발한 뒤 소비자들로부터 이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다시 정식으로 제품을 개발해 본격적인 양산에 나서는 등 제품개발에 보다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소비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제품을 개발할 경우 예전보다 재고량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주변상황이 크게 바뀌면서 오디오시장 또한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소비자들의 구매력 감소에다 대기업들의 구조조정 등으로 오디오 전문업체들의 약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LG전자, 삼성전자, 대우전자 등 가전3사가 오디오 전문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으나 최근 IMF의 구제금융 이후 대기업들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오디오사업에 대한 투자 자체를 줄이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오디오사업부를 새한미디어에 매각키로 했으나 최근 협상이 결렬돼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별도의 자회사를 설립해 오디오사업부를 독립시킬 구상을 하고 있다. LG전자는 그동안 축적한 데크메커니즘 기술을 기반으로 제품을 개발, 일본산 제품이 장악하고 있는 헤드폰카세트 시장에 사력을 집중하고 있으며 가정용 오디오에 대한 투자는 상대적으로 줄이고 있다. 대우전자는 미니컴포넌트, 카세트 등을 국내업체들로부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공급받아 오디오 사업의 명맥을 유지하는 대신 디지털 기술을 응용한 차세대 오디오사업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상황으로 올해엔 가전3사의 시장점유율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오디오 전문업체들은 올해를 시장점유율 확대의 호기로 보고 있다. 오디오 업체들은 가전3사에 비해 유통구조가 취약해 대규모 물량공세를 펼치는 가전3사보다 시장 장악능력이나 마케팅 등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였으며 전문업체들의 주력제품 역시 고가의 하이파이 오디오가 대부분이어서 국내 오디오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는 미니컴포넌트나 카세트 시장을 공략하는 가전3사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왔다.
오디오 전문업체들은 최근 취약한 유통구조를 보완하기 위해 자사 대리점뿐 아니라 대규모 할인매장과 종합 가전양판점 등에 제품을 공급하는 등 유통망 다변화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그동안 주력제품으로 내세웠던 고가의 하이파이 오디오 대신 중저가 미니컴포넌트 사업을 집중 투자해 제품군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같은 노력으로 미니컴포넌트 시장에서 오디오 전문업체들의 시장점유율도 96년 50%에서 97년에 55%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오디오 전문업체들간의 시장판도도 변화되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오디오산업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인켈」브랜드의 해태전자가 그룹 부도로 사업에 커다란 지장을 받게 되면서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전문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오디오 전문업체들은 회사별로 장점을 살린 제품을 승부수로 띄우고 있다. 아남전자는 홈시어터시장을 장악한다는 전략아래 AV리시버앰프와 영상기기, 태광은 자사의 하이엔드 오디오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보급형 하이엔드 오디오, 롯데전자는 PA 및 16종의 신제품을 무기로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다.
우선 태광산업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벌인 하이엔드 오디오 부문을 강화해 올해엔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보급형 하이엔드 오디오 사업에 집중투자할 계획이다. 태광산업은 지난해 CD플레이어, 파워앰프, 프리앰프 등 자사 하이엔드 오디오가 국내시장에서 기반을 잡았다고 보고 하이엔드 오디오의 고급 이미지를 전제품에 확산하겠다는 의도다. 태광산업은 특히 LG전자, 대우전자, 삼성전자 등으로 제품을 공급하는 OEM사업도 점차 확대해 국내 오디오 생산의 메카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아남전자는 AV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살려 대형TV, AV리시버앰프, 스피커시스템 등을 연결한 보급형 홈시어터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또 99년부터 국내 위성방송사업과 무궁화위성의 정규방송이 시작되면 AV시장이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하고 홈시어터에 위성방송수신기 등을 연계한 시스템사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롯데전자는 올해 16종의 신제품을 대거 출시해 지난해 주춤했던 사업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롯데전자는 올해초 그룹 회장으로부터 2백30억원을 지원받은 것을 끝으로 더 이상 그룹의 지원을 받지 않고 홀로서기에 나선다는 계획아래 PA, CCTV분야 등으로 사업다각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나 역시 시장 판도변화의 가장 큰 변수는 해태전자의 향배다. 해태전자가 그룹 부도를 이기고 재기에 성공할 경우 그동안 해태전자가 시장활성화를 추진했던 디지털 오디오와 홈시어터부문이 업체들간 선의의 경쟁으로 활기를 띨 전망이지만 해태전자가 끝내 좌초할 경우 국내 오디오 산업은 시장 선두업체의 부재로 양과 질의 측면에서 5년 이상 퇴보한 수준이 될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결국 국내 오디오산업은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화려한 변신을 하느냐 아니면 5년 이상 후퇴한 상황에서 다시 시작하느냐의 기로에 놓여 있는 셈이다.
<윤휘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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