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알렉스 반 버르머담 "드레스"

감독,각본,배우 등 1인 3역을 해낸 알렉스 반 버르머담이 악동같은 짓궂음과 독특한 감각으로 만든 도발적이고 공격적인 코미디.

영화 「드레스」의 주인공은 강렬한 채색으로 대담하게 디자인된 여름용 드레스다. 「보온」이라는 일차적 기능을 넘어서 이제 자신을 드러내는 성적인 코드이자 유혹의 수단이 되어버린 옷의 이중적 의미와 아이러니가 감독의 상상력을 통해 인간들의 관능 속을 날아다닌다. 목화송이에서 옷감이 만들어지고, 변태성향을 지닌 디자이너에 의해 탄생된 주인공 「드레스」는 여러 여자들에게 입혀지고 벗겨지며 또 버려진다. 이 과정에서 드레스는 자신의 주인들을 조롱하듯 야릇한 욕망의 사고를 불러일으키고 관객들에게 세상 엿보기의 쾌락을 선사한다.

애인한테 버림받고 직장에서도 해고당할 위기에 처한 텍스타일 디자이너 크레머는 이웃집의 인도 여인이 입고 있는 사리 무늬를 도용, 기묘한 나뭇잎 무늬의 푸른 옷감을 디자인한다. 이 옷감은 다시 여자친구에게 돼지와도 관계할 것을 강요하는 변태성욕자인 디자이너에 의해 멋진 드레스로 만들어진다.

매장에 걸린 드레스가 만난 첫 주인은 노년기에 접어든 스텔라. 그녀는 드레스를 입은 후 성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다. 바람에 날아간 드레스가 안착한 두 번째 주인은 파출부 조안나. 그녀는 드레스를 입고 자신의 몸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애인을 유혹해보려 하지만 오히려 드레스를 보고 성적 욕망에 사로잡힌 기차 검표원 디스메토의 표적이 된다. 그에게 이 옷은 페티시즘과 같은 성적 욕망과 분출의 대상이다. 조안나를 거쳐 더 짧고 야한 디자인으로 바뀌어 사춘기 소녀 칸탈의 몸에 입혀진 드레스는 다시 디스메토의 「집요한 표적」의 대상이 되고, 결국 이 옷은 공원에 사는 부랑자 마리의 손에 넘어간다. 겨울의 추위를 피하기 위해 칸탈의 옷을 훔친 마리는 결국 그 드레스를 입은 채 얼어죽는다.

영화 「드레스」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모두 비틀린 관계 속에서 저마다의 욕정을 갖지만 그들을 통해 느껴지는 관능은 에로틱하기보다는 쓸쓸한 소외와 단절의 소산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섹스를 시도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성공하지 못한다. 원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무참히 거절당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성폭행을 당하거나 돈을 주고 사는 관계로 전락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롱 쇼트에 담겨진 네덜란드의 아름다운 풍경을 비롯, 보여지는 영화는 리듬감있고 유쾌하지만 드레스가 겪는 이 로드무비를 통해 느껴지는 세상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밝고 자극적이며 도발적인 이 옷은 관조적인 시선으로 현대인의 고독과 단절, 그 속에 스멀거리는 욕정까지 스케치한다.

96년 베니스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했다.

<엄용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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