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업계, "원조빅딜" 화제

신정부 출범과 함께 대그룹간의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이 재계의 주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30여년전 금성사(현 LG전자)와 호남전기(로케트전기의 전신) 간에 성사된 「원조빅딜」이 관련업계에 회자돼 새삼 화제를 모으고 있다.

화제의 사건은 60년대 중반 국내 전자업계를 대표했던 금성사가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시작으로 가전사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당시 호남전기가 독점하던 건전지사업을 물밑 추진하면서 비롯됐다. 금성사로선 가전과 사업연관성이 높고 시장성도 유망한 전지를 사업화하면 상당한 시너지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

공교롭게도 47년 설립한 호남전기 역시 이 시기에 전지사업을 안정궤도에 올려놓고 사업다각화를 모색하면서 금성사가 주도하는 가전시장 진출을 은밀히 추진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금성사와의 충돌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당시는 가전과 전지시장 모두 저변이 취약했던 데다 금성사와, 광주를 기반으로 호남전기는 영호남의 대표기업들이었던 터라 양측은 정면승부에 대한 적잖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양사는 기존 사업을 고수하고 신규사업 진출을 포기한다는 내용의 신사협정을 맺고 국내 전자업계의 첫 빅딜을 전격적으로 성사시켰다. 이에따라 호남전기는 금성사의 전지라인을 접수, 전지 한우물만을 파는 계기가 됐고 금성사 역시 가전에 사업을 집중했다.

이후 호남전기는 로케트전기로 이름을 바꾸며 성장해 현재 듀라셀, 에너자이저 등 공룡기업들의 발호속에서도 최고 점유율을 기록하며 국산 전지의 자존심을 잇고 있으며, 금성 역시 TV, 냉장고, VCR, 세탁기 등으로 이어지는 가전제품을 속속 개발하며 명실공히 국내 최고 가전업체로 성장했다.

그러나 전지쪽에 사업을 계속 특화시킨 호남전기와 달리 금성은 전지부문의 숙원을 풀기 위해 이후에도 다각도로 전지사업 진출을 추진했다. 기존업체의 반발로 수차례에 걸쳐 전지시장 진출에 실패한 금성은 직접 진출은 이루지 못했으나 최근 같은 그룹계열사인 LG화학을 통해 니켈수소, 리튬이온 등 2차전지로 주종목을 바꿔 진출에 성공함으로써 마침내 30년 숙원을 풀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90년대 초반까지 LG금속에서 추진하던 사업을 이관받아 현재 니켈수소와 리튬이온전지를 중심으로 2차전지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에 나선 LG화학은 2차전지 부문에서 선두로 부상한 반면, 30여년전 빅딜 이후 전지산업을 줄곧 리드해온 로케트전기는 초강세를 보이고 있는 1차전지와 달리 차세대 2차전지부문에서는 막대한 투자부담으로 딜레마에 빠져있어 아이러니하다』고 말한다.

<이중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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