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 산업스파이 사건의 교훈

삼성전자와 LG반도체에 근무하던 일부 전직 엔지니어들이 64MD램의 핵심기술을 대만 난야테크놀로지(NTC)에 유출시킨 이른바 「반도체 산업스파이 사건」은 유출된 기밀자료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유, 무형의 피해규모가 예상밖으로 매우 크고 또 이같은 첨단기술의 해외유출사건은 법적, 제도적인 여러 허점을 보완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제2, 제3의 산업스파이 사건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수사당국의 발표는 매우 충격적이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수원지검의 수사결과 발표를 보면 유출된 주요 기밀자료 중에는 64MD램 관련, 설계, 공정, 개발 등 수십건의 주요 기술자료가 포함돼 있으며 이로 인한 피해액은 약 3천5백억원의 직접적인 연구개발비 손실을 비롯하여 향후 3년간의 매출감소 예상액 약 9천억원 등 1조2천5백억원 규모에 달한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유출된 자료 중에는 차세대 반도체인 2백56MD램 관련자료까지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그 피해액은 더욱 늘어날 것 같다. 이밖에도 대만반도체 업체들의 조기부상으로 인한 세계반도체 시장에서의 상대적인 위상약화나 공급과잉 및 가격하락 현상 등 유형, 무형의 손실까지 따지면 그 피해액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번 사건은 검찰의 신속한 수사착수로 첨단 반도체기술의 해외유출 초기단계에서 적발, 더 이상의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은 불행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첨단기술의 보호는 사후대처보다는 사전유출방지가 더욱 중요하다는 점에서 또 이같은 사건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책마련은 시급하다. 특히 이번 사건은 산업스파이에 대한 처벌규정이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국내의 법, 제도의 허점을 악용한 사건으로서 처벌법규의 미비로 수사상의 어려움이 많았다는 검찰당국의 토로는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현재 「반도체 집적회로의 배치설계에 관한 법률」이 있으나 이는 등록된 배치 설계권과 전용이용권만을 보호대상으로 하여 그 적용범위가 극히 제한돼 있고, 「부정경쟁방지법」 역시 영업비밀의 제3자 누설에 대해 형사처벌을 규정하고 있지만 그 대상이 현직에 종사하는 직원만으로 국한돼 있어 이번 사건과 같이 전직 직원이거나 제3자 유출직전 즉 미수범에 대해선 동법을 적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다. 또 형법상의 절도죄를 적용하는 경우에도 기술자체는 대상이 안되고 기술을 수록한 문서, 디스켓 등을 규율대상으로 하고 있어 자신의 디스켓에 기술을 저장하여 유출한 경우에는 처벌이 곤란하다는 것 등도 당장 시정해 나가야 할 법의 허점이 아닐 수 없다.

선진국들은 날로 급증하는 기업의 핵심기술과 영업비밀 유출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기존 법규를 대폭 개정, 보완하거나 영업기밀 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 민, 형사상의 처벌을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형사처벌 규정을 새로 도입하거나 강화해 형량이나 벌금액을 크게 높이고 미수나 음모단계에서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할 정도로 산업 스파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기업비밀을 부당한 방법으로 수집 또는 탐지하는 산업스파이 행위 자체를 규율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내산업에 적합한 첨단기술 보호기법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또 기업비밀 침해행위를 비친고죄로 규정하고 미수범에 대해서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미국, 독일 등과 마찬가지로 기업비밀을 해외로 유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사용하는 행위보다 가중처벌하는 조치도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첨단기술의 산실인 기업들에 있어서도 더 많은 관심과 대책이 있어야 한다. 첨단기술 유출의 문제점과 파급효과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는 자체교육, 특히 연구원들에 대한 철저한 의식개혁과 처우개선 방안을 강구해 나가는 동시에 핵심기술의 서류복사 등에 대한 실질적인 제한방안 및 핵심기술 담당자의 퇴직후 관리체계 보완 등은 기업들이 1차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주요 대책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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