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평] 그레이스 존스, "Nightclubbing"

최근 인기있는 MBC TV 주말연속극인 「그대 그리고 나」에는 드라마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배경음악이 흐른다. 한국에는 「바람에 실려」라는 번안곡의 원곡인 「Saddle the Wind」의 가수로 잘 알려진 루 크리스티의 「Beyond Blue Horizon」이 시종일관 흘러나와 갑자기 히트하고 있다.

이 노래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남기는 인상은 훨씬 강렬한 곡이 있다. 바로 그레이스 존스의 「I’ve Seen That face before」. 남녀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이 등장할 때면 암시처럼 등장하는 이 곡은 사실 존스의 대표작이다.

그레이스 존스라는 이름이 생소하다면 영화 007의 시리즈 중 「뷰 투 어 킬」에 등장하던 흑인 본드걸을 떠올리면 된다. 기존 본드걸과는 다른 이미지의,근처에만 가도 할퀴어 댈듯한 분위기의 살쾡이 같던 여성 킬러가 바로 그다. 또한 에디 머피가 정신 못차리는 바람둥이로 등장했던 영화 「부메랑」에서 통제 불능의 화장품 모델로 분하기도 했다.

보편적 의미의 미인(외모만 봐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애매할 정도)이라고 평가를 내리기에는 좀 무시무시한 느낌이 드는 외양과는 달리 그녀는 패션모델 출신이다. 가수로의 길로 접어든 것은 77년,전세계를 휩쓸던 디스코 바람과 그녀의 출신지의 자메이카 레게풍을 섞은 댄스음반 「Portfolio」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었다.

가수로서 이름은 걸어두었지만 그저 그런 평가와 반응만 얻어내던 그녀가 결정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81년에 발표했던 이 음반 「Nightclubbing」때문이다. 제목과 동명의 수록곡은 작년 영화 「Trainspotting」을 통해 한국에도 본격 소개된 이기 팝의 원작이다. 이 음반 최고 히트곡은 역시 「I’ve seen, , , 」로 고급스런 댄스 음악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로만 폴란스키가 감독하고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영화 「Frantic」에서는 이 음악이 거의 주제가처럼 흘러나오다시피 했다. 한국의 드라마가 이 음악을 사용하게 된 계기도 귀신나올 듯한 괴기한 분위기이면서 귀에 착착 감겨드는 멜로디,발랄한 댄스곡의 전형에 비추어 보면 훨씬 어른스러운 색깔이 짙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음악 자체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존스의 묵직하면서도 섹시한 음색,음악 외적인 카리스마 등이 이 노래의 맛을 더해준다. 물론 그의 그런 음악 외적 요소가 혐오스럽게 느껴지는 이들도 있겠지만 음악만 들어본다면야 그런 편견을 가질 이유는 없다.

존스는 메인 스트림 팝 음악계에서 높은 명성을 쌓은 가수는 아니다. 활동 영역이 넓은 탓도 있고 독특한 스타일의 음악을 추구했기에 그런 면도 있다. 이번에 한국에 발매되는 음반은 17년이 지난 다음에 소개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 당시 유행하던 후기 디스코나 영국식 뉴웨이브 댄스 음악들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까닭에 다른 시절의 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감상용 댄스 음악이란 것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박미아, 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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