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자, 정보통신업체의 투자 지분율이 높은 외국인투자자들의 경영권 참여요구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SK텔레콤 주식 지분율이 6.89%인 미국 타이거펀드는 다른 미국계 기관투자가들과 연계, SK텔레콤측에 경영개선을 요구하는 제안서를 지난달 15일 제출했다. 이들 미국 기관투자가는 자신들의 주식 지분이 9.85%에 달한다고 밝히고 △사외이사 2명을 선임하고 △해외투자 등 특정거래시 주주 과반수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하는 규정을 정관에 신설하도록 요구했다고 SK텔레콤측은 말했다.
SK텔레콤은 이에 대해 미국 펀드사들이 지명하는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라는 요구는 세계시장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 통신업체들에 사내 경영정보가 흘러들어갈 우려가 있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 자금기획팀 관계자는 『이러한 요구사항은 모두 주총 의결사항으로 3월 주주총회에서 이 문제가 정식으로 제기되면 표결 등을 거쳐 수락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며 『외국인 주식지분이 모두 33%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번 주총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타이거펀드 등의 이번 요구는 경영간섭 외에도 SK텔레콤의 적대적 M&A가 가능하도록 안전장치 차원에서 이뤄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사실 SK텔레콤은 SK그룹이 21.85%의 지분을 보유, 최대주주이지만 한국통신의 지분 18.99%의 향방이 경영권 유지에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타이거펀드 등 외국 투자기관들이 한국통신의 지분을 가져갈 경우 SK그룹의 지분보다 7%포인트 높아진다. 그만큼 SK텔레콤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한국통신의 지분을 인수할 것이고 이로 인해 적대적 M&A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자, 정보통신업계에서는 이같은 점을 감안, 외국인들의 공세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올들어 외국인 주식지분이 크게 높아진 삼성전관, 대우통신, 대덕전자, LG전자 등도 SK텔레콤처럼 외국투자가들의 경영권 참여요구에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이들 기업은 적극적인 외국인투자자 관리를 위해 최근 증권팀을 대폭 보강하는 한편 임직원들의 자사주 획득을 지원하는 등 우호세력 확대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LG그룹은 주력인 LG전자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최근 구본무 회장 등이 LG전자 주식을 추가 매입, 지분을 5.08% 확대한 데 이어 앞으로도 한계사업 처분 등에서 얻어지는 자금을 핵심계열사의 내부 지분율을 높이는 데 우선 사용키로 했다. 삼성, 현대, 대우 등도 전자관련 우량 계열사가 외국인들의 공략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고 내부 지분율 확대와 우호세력 확대 등으로 적대적 M&A에 대비하고 있다. 특히 최근 외국인투자가 과열현상을 보이고 있는 삼성전관과 삼성전자는 각각 오는 3월로 예정된 주총에서 이사의 숫자와 자격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등 적대적 M&A의 요건을 강화할 방침이다.
현재 국내 상장기업의 주식 사재기에 나서고 있는 외국투자가들이 국내기업의 직접적인 경영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환율변동에 따른 차익 및 주가상승에 따른 수익을 겨냥하고 있는 게 대부분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국내기업 경영에 관심이 있는 외국투자가들은 수면 아래서 은밀히 대상기업을 탐색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 외국투자가가 노리는 업종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경영전략에 부합하는 전자, 정보통신업체와 소규모 자금만으로 안정적인 부가가치를 확보할 수 있는 기업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저급의 기술이전 및 지원으로도 지속적으로 국내시장은 물론 동남아, 중국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기업, 원재료 또는 부품 등을 독점적으로 공급해 후방산업의 통제가 가능한 기업, 외산제품의 국내판매대행회사, 상표이미지가 높으며 전국적인 유통망을 갖춘 기업이 외국인들의 M&A공략대상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기업M&A 공략 시기도 정부의 허용과 함께 곧바로 이뤄지기보다 대주주들과 지분경쟁 싸움이 벌어지지 않을 때일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마디로 국민 감정을 고려해 이뤄질 것이란 것이다. 그런 만큼 투자부담이 적고 국민 감정을 거스르지 않는 기업이 우선 표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벤처기업이 대상이 될 수 있다. 소규모 투자로 인수가 가능한데다 국민 감정도 거스르지 않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 최근 외국기업 및 펀드매니저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는 벤처기업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기업사냥에 나서고 있다. 그것도 전자, 정보통신 벤처기업들에 집중되고 있다.
한편 증권분석가들은 삼영전자(외국인 지분 비율 34%), 아남산업(36%), 세방전지(34%), 한라공조(45%) 등 외국기업과 합작으로 설립된 회사에서는 외국 합작회사가 인사권 등 핵심 경영권을 국내 주주들과 공동 행사하면서 상호 협조와 견제를 통해 회사를 모범적인 기업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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