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부품업체인 S사의 L사장은 최근 큰 고민이 하나 생겼다. IMF시대를 맞아 내수경기가 썰렁해지고, 환율상승으로 수출이 위기탈출의 돌파구이자 재도약의 호기로 간주되고 있지만 말이 좋아 수출이지 도무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그저 막막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창업한 지 10년도 채 안됐고 연간 매출액도 30억원 불과한 데다 그동안 내수영업에 주력해오다 막상 해외시장에 진출하려니 이것저것 절차가 복잡한 게 한두가지가 아닌 것. 40여명의 종업원이 있지만 대부분 생산과 관리통일 뿐이어서 믿고 맏길 사람조차 없다. 이에 따라 L사장은 직접 동분서주해보지만 시간만 소비할 뿐 별 소득이 없다.
어렵게 문을 두드린 곳은 전문 수출대행업체. 그러나 전문업체를 통함으로써 골치아픈 수출절차나 정보문제는 해결됐지만 국내외 유통업체들을 한두다리를 거치다보니 차떼고 포떼고 남는 게 별로 없다. 환율이 올라 좋은 가격을 받을 것이란 기대도 환율정보에 능통한 외국업체들의 무차별적 가격네고에 부닥치면서 이내 실망으로 되돌아왔다.
제조업체는 좋은 제품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는 전근대적인 발상과 우물안 개구리식의 마케팅마인드가 빚어낸 현 국내 중소 부품업계의 한 단면이다. 실제로 어느 정도 규모에 올라선 일부 중견 부품업체를 제외한 대부분 국내 중소 부품업체 경영자들이라면 현재 이같은 두터운 마케팅의 벽에 부딪혀 있거나 이를 경험해본 적이 있다는 데 대개 동감한다.
IMF시대의 출범으로 전자산업의 구조조정이 더욱 본격화되면서 이처럼 부품업게에도 마케팅의 중요성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제 부품업체들도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주먹구구식의 영업에서 탈피,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수요자들에게 제품을 제대로 알리는 선진화된 마케팅기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앞으로는 파는 부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팔리는 부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의 제품이 잘 팔려나가기 위해선 만드는 데만 집중해선 안됩니다. 제품의 콘셉트와 장단점을 확실하게 알려줌으로써 수요자들의 믿고 쓸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제조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중소업체임에도 불구하고 생산량의 70% 이상을 미국, 중국, 동남아, 유럽 등에 수출하고 있는 Y사 A사장의 말이다.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새로운 마케팅기법을 적극 도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문가의 육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많은 업체들이 마케팅과 영업을 동일시하는데 마케팅전문가와 영업맨은 엄연히 성격이 다릅니다. 마케팅전문가는 개발-생산-판매-서비스부문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신규 수요와 신시장, 신제품 등을 발굴하는 핵심요원입니다.』(C사의 O사장)
이 대목에서 중견 부품업체인 K사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K사는 이례적으로 지난해 부사장 직속에 5, 6명으로 구성된 마케팅팀을 발족했다. 주문제작형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로서 마케팅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시장흐름을 남보다 먼저 간파해 신규시장을 적극 창출하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마케팅팀이라고 해야 전문가가 아닌 기존에 영업부원들이 중심이 된 탓에 결과는 별로 신통치가 못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영업이나 홍보를 마케팅과 동일시하거나 영업맨 등 기존 부서원이 1인2역식으로 마케팅을 겸하는 인식은 세계화와 무한경쟁이라는 시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며 『IMF시대를 맞아 중소 부품업체들도 마케팅에 대한 마인드 전환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중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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