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6년 헌법재판소의 영화 사전검열 위헌결정으로 관주도의 「공연윤리위원회」가 폐지되고 이듬해 10월 민간자율의 심의기구인 공연예술진흥협의회(공진협)가 출범했다. 영상물 사전 검열시대의 첨병역할을 맡아왔던 공륜과는 기능과 성격면에서 판이하게 다른 만큼 공진협에 대한 기대 또한 대단했다. 특히 영화의 등급제가 시행되고 문체부에서 관장하던 외국영화 추천권이 공진협으로 이관된 것 등은 획기적인 변화의 일보였다. 더욱이 기구 구성에서 행정권의 영향력을 최대한 배제한 것은 명실공한 민간 자율심의 기구로서의 자리매김을 위한 조치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최근들어서는 공진협이 공륜과 차이가 없다는 불평이 들리고 있고, 차기정부도 공진협을 어떤 방식으로든 메스를 가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해 앞으로의 위상이 주목된다. 서기원 위원장을 만나 공진협의 위상과 발전방향, 심의제도의 문제점 등에 대해 들어봤다.
-관주도의 단체에서 민간자율기구로 바뀐 공진협의 위상과 발전방향을 말씀해 주십시오.
▲각국마다 특성이 있긴 하지만 영상물에 대한 심의기구는 상존합니다. 영상물에 대한 사전심의가 위헌이라는 판결은 시대조류에 맞는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상물 제작자들로서는 심의 자체가 번거로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공적인 기구가 있고 없고의 차이점은 크다고 봅니다. 아직은 공공성과 공익을 위한 기구는 필요하며 특히 폭력물과 마약, 음란물에 대한 공적인 장치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일부에서는 업자들끼리 심의하는 기구가 보다 자율적이라고 말하기도 하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업자들끼리의 심의가 제대로 이루어지겠습니까. 공공성과 객관성,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는 기구는 업계 보호차원에서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만 공연예술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라든지, 전통적인 가치관과 도덕, 윤리 등 사회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내에서의 자율은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게 제생각입니다.
-올해 심의제도와 관련, 최대의 역점을 두고 있는 부문은 무엇입니까.
▲예비심의와 본심의의 오차를 최대한 줄이려 하고 있습니다. 재심청구의 경우도 크게 완화하고 있습니다. 종전에는 심의위원 3분의 2 출석에 3분의 2 찬성만이 재심이 가능했으나 지금은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면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폭력, 마약에 대한 심의는 강화할 방침입니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다만 애정표현 등에 있어서는 시대조류에 맞게 탄력적으로 대처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외국의 사례를 조사, 연구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공진협 무용론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공진협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역할과 기능에 있어 우리나라에는 이같은 조직이 필요하다는 게 제생각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신정부 들어서서도 문화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업계 자율보다 아직까지는 보호막 장치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완전등급제 등 영상업계의 의견을 수렵할 방안은 없는 것입니까.
▲개인적으로는 등급외 판정을 받은 영화를 위한 성인영화관의 설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사회관습과 풍토, 기강문제를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성」에 대해서는 대폭 완화하는 것이 시대 흐름에 맞는 것이라고 봅니다.
-영화, 비디오에 대한 심의가 들쭉날쭉하고 심의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비디오에 대한 사시적인 시각 때문이 아닐는지요.
▲이 문제는 정말 논란거리인 것 같습니다. 영화와 비디오의 매체특성을 고려하면 비디오를 완화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보면 청소년들에게 노출되기 쉬운 것이 비디오라는 점입니다.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영화심의를 받은 비디오에 대해서는 심의를 받지않고 그대로 심의통과가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 보겠습니다.
서 위원장은 끝으로 공진협이 업계에 군림하는 단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업계에 봉사하는 자세로 무장하고 있으며 업계의 애로사항을 최대한 수렴, 풀어나갈 계획이라고 재다짐했다. 그러나 그는 이 말도 잊지 않았다. 아직은 사회로부터 공공성과 권위를 인정받는 사회보호장치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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