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LG반도체의 전, 현직 엔지니어들이 우리의 첨단 반도체 기술을 빼돌려 대만으로 유출한 사건은 충격적이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통해 그동안 부인하고 싶었던, 항간에 떠돌던 소문이 사실로 밝혀졌음을 확인했다. 먼저 이번 사건은 몇 가지 점에서 예사로 보아넘길 사안이 아닌 듯하다.
반도체 기술을 대만으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자들의 인적 규모가 크고 조직적이라는 점을 우선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전자와 LG반도체는 세계적인 반도체업체로서 이미 메모리 분야의 생산능력뿐 아니라 기술수준도 세계 일류다. 이같은 업체에서 장기간 근무하던 전, 현직 엔지니어들이 그동안 축적한 기술은 물론 설계도면까지 조직적으로 빼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번 사건은 대기업의 연구원들을 고액의 연봉조건으로 스카우트한 회사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이 크다고 할 것이다.
현재 그들이 빼돌린 기술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들은 반도체 설계도면과 회로도 등 기밀자료를 복사하거나 디스켓에 담아 유출했고 그중에는 이제 막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64MD램의 일부 설계도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이번 기술유출은 피해를 당한 업체들의 부인에 불구하고도 심각한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이 회사에 스카우트된 연구원 중에는 2백56메가D램 개발에 참여한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반도체기술 유출의 파장은 조사결과에 따라 매우 심각하게 확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오늘날 기술력은 곧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특히 반도체나 소프트웨어, 통신 등 첨단기술은 국가 기간산업과도 같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가 세계 제5위의 전자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엄청난 규모의 기술개발 투자가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 또 때로는 뒤진 기술을 조기에 향상시키기 위해 막대한 기술 도입료를 지불해야 했으며 특허분쟁에 휘말려 적지 않은 특허료를 지불하기도 했다.
이번 기술유출은 우리가 오랫동안 축적한 기술을 일부 산업 스파이에 의해 부당한 방법으로 도용당한 것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경쟁국인 대만에 일부 핵심 반도체 기술을 빼앗김으로써 우리를 바짝 뒤쫓고 있는 대만에 추격당할지 모르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사건은 기술을 빼돌린 한국의 엔지니어들도 문제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기술을 얻으려 했던 대만의 업체도 마찬가지로 국제적인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반도체 기술의 유출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건은 지난 96년 미국에서 인텔사의 엔지니어인 가에다가 인텔사의 486 및 펜티엄 칩에 대한 특허정보를 입수, 비디오 테이프에 녹화해 이를 AMD사에 보낸 바 있다. 그가 입수한 정보가치는 1천만∼2천만 달러에 달하는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됐다.
현재 세계 각국은 산업 스파이로 인해 큰 손실을 입음에 따라 법으로 제재를 강화하는 추세다.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이 지난 96년 정보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기업스파이 법」을 제정, 개인범죄의 경우 최고 5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으며 최고 1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이 이같은 법을 제정한 것은 정보나 기술도용으로 연간 3백억 달러를 피해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러한 사건발생을 사전에 막고 첨단기술을 국가차원에서 강력하게 보호하기 위해 미국처럼 관련 법규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정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 이번 사건은 그 진상을 철저히 가려 최상이 있다면 엄중히 처벌함으로 일벌백계해야 하겠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그 규모가 적지 않고 조직적인 점을 감안, 이같은 형태의 산업 스파이가 비교적 널리 퍼져 있는지도 철저히 수사해야 하겠다.
처벌이나 규제에 앞서 기술유출에 대한 피해는 일차적으로 기업에 돌아가는 만큼 개별 업체 차원에서도 철저한 대응책이 요망된다.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이 개발되고 신제품이 나오는 현실에서 기업체가 자체적으로 산업 스파이를 막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 유수의 업체들이 도입하고 있는 첨단 감시망이나 산업 방범망도 서둘러 구축하고 강화해야 하겠다.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것은 고급 엔지니어들의 유출을 기업체 스스로가 막는 일이다. 엔지니어들을 우대해 한번 입사하면 평생 직장으로 생각하고 일할 수 있는 회사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정보 유출을 방지하는 지름길임을 다시 한번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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