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맞이 영상 프로 특집] 할리우드 현란한 액션 한반도 흔든다

국내 프로테이프 제작사들이 자체 집계한 「97년도 비디오 판매량」은 한국인의 영화 입맛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게 한다. 비록 극장처럼 큰 화면과 웅장한 소리를 즐길 수는 없지만 「저렴한 요금」(대여료)과 「편안한 관람」을 장점으로 하는 안방극장은 무시할 수 없는 영화세계인 것이다.

안방극장의 실체를 들여다보자. 20세기폭스사의 「인디펜던스데이」는 지난해 1월 비디오로 출시됐는데 판매량이 13만1천5백개에 달했다. 이는 약 1만5천여개로 추산되는 전국의 비디오대여점들이 각각 10개 이상씩 구매했으며 테이프 1개당 통상적인 대여횟수를 25∼30회(대여기간 1.5∼2개월)로 가정할 경우 약 3백28만7천∼3백94만5천명이 안방에서 「인디펜던스데이」를 감상했다는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가족이 모여 관람했을 경우를 상정하면 실제 「인디펜던스데이」의 안방관람객 수는 그보다 1.5배 이상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작 비디오의 평균 대여료를 1천∼2천원으로 잡을 때 「인디펜던스데이」의 안방극장 관람료 총액은 약 32억∼65억원에 이르러 어지간한 인기영화의 극장 흥행수익보다 많다. 비디오가 기존에 인식되던 「영화의 2차적 수익창출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뛰어넘어 독립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안방극장에서의 흥행을 위해 영화가 갖추어야 할 요소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 대답으로 떠오르는 단어들은 「할리우드」 「액션」 「웃음」이다.

한국에서 영화직배 10년의 아성을 구축한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극장은 물론이고 안방까지 점령하고 있다. 지난해 비디오 실판매수가 8만개를 넘어선 「인디펜던스데이」 「제5원소」 「로미오와 줄리엣」 「롱키스 굿나잇」 「볼케이노」 「트위스터」 「데이라잇」 등은 모두가 할리우드에 적을 둔 영화였다.

천문학적인 영화제작비, 컴퓨터 그래픽 특수효과로 대변되는 월등한 눈속임 기술, 전세계에 구축되어 있는 탄탄한 배급망 등 할리우드 영화의 황새걸음이 한국 영화팬들의 안방에까지 닿고 있는 것이다.

분석기준을 판매량 7만개 이상으로 내려잡았을 때의 특징은 「액션」이다. 판매량이 8만개를 넘어섰던 영화들은 물론이고 「비트」(7만9천여개) 「스피드 2」(7만8천여개) 「랜섬」(7만2천여개) 「단테스피크」(7만5천여개) 「나이스가이」(7만4천개) 등은 모두가 액션영화였다.

외계인들의 지구정복 의도를 분쇄하러 전투기에 오르는 미국대통령(인디펜던스데이), 지구멸망을 지켜낼 마지막 보루인 제5의 원소를 찾아내기 위한 택시운전사(제5원소), 뛰어난 사격술과 격투기로 무장된 가정주부(롱키스 굿나잇), 도심 한가운데에 진원지를 둔 화산(볼케이노), 상상을 초월하는 회오리 바람(트위스터), 부두에 충돌하는 대형 여객선(스피드 2), 아들을 유괴한 범인과 격투를 벌이는 아버지(랜섬) 등이 등장해 한국의 안방극장을 화려한 액션장면들로 채워놓았던 것이다.

「비트」(한국)와 「나이스가이」(홍콩) 이외에는 모두 할리우드 영화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두 영화는 한국형, 홍콩형 액션영화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할리우드 액션영화들에 등장한 화산폭발, 건물파괴, 외계인의 습격과 같은 장면없이 출연배우들이 「몸으로 때우는 연기」를 보여줬다.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해 액션의 규모에 큰 편차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동양인, 특히 한국인들의 구미에 잘 맞아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영화로 시선을 옮겼을 때 두드러지는 특징은 「웃음」이다. 물론 김성수 감독의 「비트」가 한국영화 중 최다판매량을 기록하고 「깡패수업」(6만5천여개) 「귀천도」(5만4천여개) 등의 액션영화가 좋은 판매량을 보이긴 했다. 그러나 「넘버3」(6만4천여개)를 비롯해 「고스트 맘마」(5만5천여개) 「마지막 방위」(5만여개) 「똑바로 살아라」(4만8천여개) 「베이비 세일」(4만3천여개) 「산부인과」(4만2천개) 등의 영화들이 「한국영화는 코미디가 주류」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이같은 한국영화들은 배우와 장르에서 안방극장에서의 흥행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인 「부담없음」을 충족시켜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의 안방 영화팬들은 한석규, 박중훈, 최진실 등과 같은 배우들을 좋아하는 나머지 그들의 엉뚱한 몸짓과 대사에 터놓고 웃으며 즐기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세 배우들은 「깡패수업」 「넘버 3」 「고스트 맘마」 「똑바로 살아라」 「베이비 세일」에 각각 출연했다. 그 이후에도 「할렐루야」(박중훈) 「접속」(한석규) 「편지」(최진실) 등 극장 흥행작에 잇따라 출연, 97년 말과 올해 초반기의 비디오 대여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취향에 따라 혼자 감상하기에 알맞을 영화들의 판매량이 전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판매량 1만개를 넘어서기 힘들었던 영화들이 판매량 2만∼3만개를 가볍게 넘어서는 일이 많아졌는데, 이는 『한국 영화팬들의 심미안이 넓어지는 증거』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낳고 있다.

「타임 투 킬」(6만2천3백94개) 「제리 맥과이어」(5만9천4백67개) 「에비타」(3만5천6백15개) 「트레인스포팅」(3만5천30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2만8천7백개) 「프라이트너」(2만8천1백40개) 「샤인」(2만8천개) 「제8요일」(2만3천2백개) 「로스트 하이웨이」(1만8천7백개) 「악어」(1만9천2백30개) 등이 기대 이상의 판매실적을 보였던 것이다.

특히 「트레인스포팅」 「로스트 하이웨이」 「악어」의 대중적인 인기가 눈길을 끈다. 이 영화들은 내용이 난해할 뿐만 아니라 지루해 편안한 영화감상을 방해한다. 그러나 일반 영화팬들의 수준이 마니아에 버금갈 정도로 향상되면서 판매량이 증가하는 현상을 보였다. 98년 안방극장에서는 어떤 영화들이 인기리에 상영될 것인지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진다.

<이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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