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연구개발은 기반기술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더욱이 기반기술을 상용기술로 전환하는 산학협동연구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기술선진국이 산학연구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 기반기술을 연구해야 할 대학들이 연구비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다. 연구비가 모자라 그동안 추진해온 연구개발 사업을 연기하거나 중단할 수밖에 없는 사태를 맞고 있다. IMF 한파가 대학에까지 불어닥치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정부의 연구보조금마저 줄어든 데다 기업들도 연구비 출연을 꺼리고 있어 기반기술 개발에 비상이 걸린 상태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교육부가 조사한 「97년도 대학연구비 수주현황」 자료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자료를 보면 지난해 전국 1백69개 대학과 1백21개 전문대 등 총 2백90개 대학의 연구개발비 총액이 5천6백7억원으로 우리나라 GNP(3백90조원) 대비 0.14%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선진국의 GNP대비 0.4~0.5% 수준과 비교해서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수준이다.
특히 대학의 연구비중 정부 및 자치단체의 지원금액은 GNP의 0.07%인 2천8백1억원으로 선진국의 0.3% 에 비해 4분의 1에도 못 미치지 못하는 극히 미미한 실정이라는데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기반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정부가 정작 기초학문의 연구진흥을 위해 무엇을 하는지, 제대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개발은 원래가 당장의 성과보다는 미래지향적이다. 더욱이 IMF시대의 이 어려운 난국극복을 위해 대학의 연구개발은 더욱 중요시되어야 한다. 난국극복의 유일한 해결책은 연구개발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학의 연구개발이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 더욱이 박사급 이상 고급 연구인력이 대학에 75% 가량 몰려 있는 우리 현실을 감안할 때 이들이 현실적으로 연구개발에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은 국익 차원에서도 대단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기업과 정부의 각종 연구지원금이나 출연금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 현상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다. 최근 서울대를 비롯한 대다수 이공계대학 연구실의 경우 신규 산학협동 연구계약 규모가 지난해보다 30% 이상 크게 줄어들고 있으며 특히 일부 대학에선 작년 말부터 약속했던 지원마저 끊어지고 있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실험기자재를 제대로 구입하지 못하는 대학들이 실습을 줄이고 이론교육으로 대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는데 이러다간 그동안 추진해온 기반기술의 상용화 등 산학협동이 공념불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기술개발이나 산학연구는 경제위기 때마다 항상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분야이다. 먹고살기 바쁜데 무슨 연구이냐는 견해가 득세하기 때문이다. 기술개발이야말로 위기극복을 위한 지름길로 어려울 때 더 투자해야 한다고 모두들 외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정부의 연구비 예산이 삭감되고, 기업 역시 산학연구사업을 속속 폐기하고 있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물론 대학들도 감량경영을 하고 있는 기업들 못지않게 기반기술개발이나 산학연구에 있어 거품빼기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대학의 체면만을 앞세워 실제 연구보다는 연구시설만을 강조하거나 단지 리포트 제출로 연구결과를 마감하는 과제수행은 사라져야 한다. 또 교수들 역시 과연 지금까지 효율성이 높고 생산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수행해왔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외형이나 겉멋에만 치우쳐 내실을 무시하지 않았는가도 살펴보아야 한다. 또 불필요한 중복 연구로 아까운 연구비를 낭비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사상누각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모래 위에 집을 지어봤자 곧 허물어진다는 뜻이다.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는 말이다. 기술개발 역시 기반기술이 튼튼해야 한다. 이러한 기반기술을 바탕으로 응용기술이 나오고 이는 곧 우수한 상품개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나 기업이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는 IMF시대라 할지라도 미래를 짊어질 대학에 보다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 미래를 팔아서 현재의 곤란을 극복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 대학의 연구개발에 보다 많은 투자를 단행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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