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오래돼 빛바랜 이론이지만 「실리콘사이클」이라는 게 있었다. 메모리 반도체 경기가 올림픽처럼 4년 주기를 갖는다는 것이 골자다. 64KD램이나 2백56KD램, 1MD램까지는 그런대로 이 이론은 맞아 떨어지다가 그 후로는 주기가 좀 짧아지는 듯하면서 궤도를 이탈해 버렸다. 기존 이론으로 급변하는 요즘 산업추세를 따라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93, 94년에는 반도체 경기가 활황이었다. 더 만들지 못해 못파는 듯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를 팔아 순수익이 수조원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올려 그 전까지 천억 단위의 순익을 올려 대단한 업체로 알려졌던 모 제철업체를 무색케 했다. 당시 삼성 직원들은 순익 증대에 따라 상여금 외에도 여러가지 명목으로 엄청난 성과급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 이후 반도체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져 지난해까지 반도체 경기는 바닥을 헤맸다. 수출도 줄었거니와 가격 하락으로 채산성이 크게 나빠졌다. 덩달아 국내 경기도 침체되자 각계에서 『반도체 거품을 빼야 한다』느니 『어떤 그룹의 반도체사업과 다른 그룹의 자동차사업을 맞바꿔야 한다』 등 하는 온갖 얘기들을 쏟아냈다. 급기야 얼마 전 재경원 차관이 『우리나라가 금융 및 외환위기에 처한 것은 「반도체 호황」 때문에 경기를 잘못 예측했다』고 말해 이제 「반도체 망국론」까지 등장한 것 같다. 반도체산업 규모가 워낙 크고 또 부가가치가 높다보니 반도체 호황이면 누구나 눈에 콩깍지가 씌고 귀도 어두워질 법하다. 그렇다고 해서 일국의 장래를 걸머지고 있는 고급 관리의 미혹(迷惑)과 미망(迷妄)을 탓하거나 덮어두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행스런 일은 새해들어 반도체 가격이 올라간다는 점이다. 고환율 시대에 제값을 받고 수출하기만 한다면 또 다시 반도체 경기가 호황을 구가하지 말란 법도 없다. 올해는 반도체 호황이 끝난 지 만 4년이 돼 굳이 실리콘사이클에 꿰 맞추면 호황의 정점에 해당한다. 이제 『반도체 경기가 좋아서 IMF체제로부터 조기에 졸업할 수 있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을 이른 시일 안에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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