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榮恪 삼정컨설팅그룹 대표(미국변호사, 공인회계사)
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출범 이후 세계는 하나의 단일시장으로 통합되기 시작하였으며 문자 그대로 국경없는 무한경쟁시대가 도래했다. 또한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시대의 도래로 인해 한국경제에서 통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 30년간 대외무역을 기초로 성장해 온 한국경제로서는 이러한 시대의 변화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이러한 환경변화에 근거하여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통상정책에 여러가지 기대를 갖게 된다.
우선 대외통상정책을 일관성있게 수립하고 이행할 수 있는 정부조직개편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통상정책은 통상산업부, 외무부, 재정경제원 등 여러 부처에서 입안, 이행됨으로써 조직적이고 일관된 수립 및 이행이 불가능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나 시행착오를 많이 겪을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국익의 손실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 직접적인 통상부서가 아닌 부서가 관련 통상정책을 옥상옥으로 관리하려고 함으로써 실제 통상부서의 업무진행을 오히려 방해하여 온 것도 사실이다.
새로 개편되는 통상부서는 명실상부하게 대외통상정책의 총괄하는 부서로서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가져야만 효율적이고 일관적인 정책 수립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대외경제부 또는 무역대표부의 신설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이밖에도 현재 통상산업부에 소속되어 있는 무역위원회의 독립기관 승격도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무역위원회는 통상정책을 직접 입안하는 부서는 아니지만 통상분쟁의 해결, 불공정무역행위의 규제등 통상과 관련된 여타 사안을 다루는 매우 중요한 기관으로 업무상 준 사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반드시 독립성을 유지해야만 할 필요가 있다. 현재와 같이 무역위원회가 통상산업부에 소속되어서는 무역위원회의 설립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므로 공정거래위원회와 유사한 형태로 독립기관화 할 필요성이 크다고 하겠다. 유사한 기구인 미국의 국제무역위원회도 준사법적인 권한을 갖는 독립기관으로 설치되어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우수한 통상전문인력을 양성 또는 영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통상정책은 그 성격상 기술적이고 세부적인 면까지도 모두 고려하여 입안, 이행되어야 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런 점에서 통상정책을 담당하는 관료들은 제너럴리스트라기보다는 스페셜리스트의 성격을 지녀야 하며 다년간 관련 업무를 계속 담당함으로써만 업무의 연속성과 효율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런 데도 현재의 정부의 인력관리 상황은 통상담당관료마저도 제너럴리스트 양성의 맥락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업무가 계속 단절되고 전문화가 미비한 문제점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국제협상에 임할 때도 매협상 때마다 담당관료가 바뀌고 전혀 문외한이 주무관이 되는 웃지 못할 사태가 일어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향후에는 통상 전문인력을 중장기적으로 내부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전문화제도가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민간부분의 통상전문가를 과감히 공직에 등용함으로써 인력의 관리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는 앞의 두가지 기본 틀에 기초하여 통상분쟁에 대한 조직적인 대응 태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WTO시대에 통상분쟁과 이와 관련한 수입규제는 피할 수 없는 일종의 필요악으로 정착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은 각국에서 통상분쟁으로 인한 수입규제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이러한 수입규제국가가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가들로 급속히 확산됨으로써 피해 위협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통상분쟁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은 기술적인 차원을 넘어서 수출의 사활을 직접적으로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변수라고 할 것이다.
과거 30년간 한국의 전자 산업은 수출입국을 선도해온 주요 수출산업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의 전자산업은 국제통상분쟁의 주요 대상이 되어 왔으며 그 결과 수많은 품목 여러가지 형태의 수출규제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몇 가지의 예를 들어 보아도 미국의 경우 D램, 컬러TV브라운관, 전자교환기시스템, EPROM, S램, 유럽의 경우 컬러TV, 비디오오디오카세트테이프, 카라디오, D램 등의 전자제품이 통상분쟁으로 인한 수입규제를 받고 있다. 특히 이러한 제품들은 주력수출품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수입규제에 따라 해당 제품의 수출에 막대한 피해를 입은 바 있다.
그럼도 불구하고 그간 우리나라의 통상분쟁에 대한 정책은 매우 비조직적이고 비효율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통상분쟁은 그 성격상 분쟁이 발생한 연후에는 사실 수습방안이 매우 제한적이고 그 효과 또한 낮은 것이 보통이므로 사후적 대응보다는 사전에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 훨씬 합목적적이다. 그러나 과거 우리나라는 정보부족 및 조직적인 대응체제 미비 등의 이유로 항상 사후적 대응에만 치우침으로써 효율적인 대응에 실패한 바 있다. 이러한 점에서 새로운 정부는 더욱 사전적이고 체계적인 통상분쟁 정책을 입안, 시행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과거의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통상분쟁 대응에서 벗어나 더욱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통상정책의 기조가 수출진흥에 맞추어져야 할 것을 기대한다. IMF체제하에서 우리나라의 생존은 거의 전적으로 수출에 달려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통상정책이 수출진흥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WTO체제는 과거와 같이 수출보조금 등의 직접적인 지원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부의 정책은 WTO가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간접적이면서도 기업들이 도움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위기는 위협과 기회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새 정부가 작금의 위협을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슬기로운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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