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진출 한국업체 점검
멀티미디어, 정보통신의 요람 실리콘밸리가 최근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다. 세계 불황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어와 패기 가득찬 젊은이들이 벤처기업을 만들어 연이은 성공신화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를 주름잡는 대부분의 정보통신 벤처기업들이 모여 있는 실리콘밸리는 비단 미국의 벤처단지로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벤처기업가들이 그리는 성공모델로, 국제통화기금(IMF)관리시대를 극복하고 재기할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첨단기술에의 꿈을 키우기 위해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한국기업 및 한국계 벤처기업의 성장잠재력을 점검해 본다.<편집자주>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 새너제이, 샌타클래라, 프레몬토시 등 「현대판 골드러시」의 현장인 실리콘밸리」. 변화를 추구하고 급진적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일수록 환영받는 「변화지향적 문화」, 현재 상태에 만족하는 법이 없고 항상 최고를 추구하기위해 동료의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극한을 추구하는 문화」, 「검토하지 않고 행동하는 문화」, 「실패에 대해 관대한 문화」가 존재하는 곳이다. 실패란 종말이 아닌 새로운 도전을 의미하듯 벤처자금들이 높은 실패율에도 불구하고 이곳 실리콘밸리에만은 끊임없이 몰려들고 있다. 미국 전체 벤처투자의 37%가 이곳에 집중됐다는 사실로만으로도 잘 알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들은 짧은 상품개발 사이클, 직원들의 잦은 이직을 바탕으로 성장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에서 정보통신, 멀티미디어분야의 기술은 거의 18개월마다 새로운 기술로 대체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직률도 심하다. 제품 개발에 따른 라이프사이클이 짧기 때문에 관련 개발이 끝나면 직원들은 타기업으로 옮기며 이를 통해 다양한 경험과 기술력이 축적돼 벤처기업을 성공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또 많은 벤처 기업가들이 모여 실리콘밸리 전체를 하나의 회사처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특정회사에 대한 애사심보다는 개인의 아이디어와 비전을 중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실리콘밸리에서의 마케팅직원, 엔지니어는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라기보다는 성공 가능성있는 한명의 예비창업가가 되는 셈이다. 특히 대학과 기업, 연구소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성장한 직원은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창업을 시도해 실리콘밸리를 더욱 강력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새로운 산업조류인 정보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곳이면서도 철저한 시장원리와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신속하게 이합집산을 하고 경쟁력있는 조직으로 최대한 성장, 진화, 분화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실리콘밸리는 환경에 기민하게 적응하는 유기체와 같은 기업들이 모인 곳이다. 독특한 산업생태계를 형성한 실리콘밸리에도 한국 벤처기업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문화가 말해주듯 이곳의 수많은 성공신화 중에는 「코리안 드림」의 빛나는 사레도 많다. 벤처기업의 천국이라고 알려진 실리콘밸리에서 뿌리내린 코리안 벤처기업들도 국내 벤처기업 못지않게 어려운 시절을 거쳐 성장했다. 「실리콘밸리의 킹」으로 불리는 파워컴퓨팅사의 강신학(미국명 스티브 강)사장은 7년여동안 IBM에 근무하다 83년 실리콘밸리에 컨설팅회사를 설립, 86년 미국시장에서 한국산 IBM호환PC로는 처음으로 시장 셰어 3위까지 끌어올린 대우통신의 「리딩에지」모델을 개발한 주역이기도 하다. 97년에는 매킨토시 호환컴퓨터를 15만대이상 판매하는 기록을 세우기도해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21세기 컴퓨터산업을 이끌고갈 전세계 50대 인물중 한명으로 꼽은 인물이다.
반도체 제조장비 전문업체인 AIO사의 김인곤 사장은 고졸출신으로 19세때 가족과 함께 미국에 이민, 이 회사를 설립해 지난 96년 매출 2천만달러의 탄탄한 회사로 키워낸 인물이다. AIO는 모토로라, 내셔널세미컨덕터 등의 중고장비를 수리해주는 일에서 출발, 이제는 자체개발한 장비를 세계 각국 반도체회사에 수출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코리안 드림의 원조격인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사의 이종문 회장은 지난 96년 8억달러의 매출실적을 올릴 정도로 실리콘밸리에서도 성공한 기업. 그는 현지 자선단체에 기부해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최근엔 벤처캐피털과 컴퓨터백업시스템 전문업체를 설립, 새로운 사업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제록스 출신의 이대범 사장은 LCD 패널 드라이브, 시리얼 통신장비 등을 만드는 실리콘 이미지사를 세워 활동중이다. 실리콘이미지는 박막액정표시장치(TFT LCD)를 일반 네트워크컴퓨터(NC)에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칩을 개발,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아프로사의 김근범 사장은 세계적인 네트워크장비 업체인 시스코사에 월 50만달러규모의 장비케이스를 납품, 연간 1천2백만달러의 매출실적을 올리고 있으며 비메모리 반도체칩을 생산하는 IC웍스사의 이일복 사장도 지난 96년 3백억원정도의 매출을 올려 회사 기반을 탄탄히 했다. IC웍스는 반도체 제조와 PLL을 이용한 클럭 제너레이터까지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한국계 기업의 사장들은 대부분 실리콘밸리 대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PSI의 박상일 사장, AIO의 김인곤 사장 등은 포드자동차, 스탠포드대학, HP 등에서 연구원 생활 등을 통해 미국 물정을 파악한 이후 창업한 경우이다. 물론 다이아몬드사의 허영회 사장의 경우 국내에서 삼신컴퓨터 등에서 근무하다가 미국 다이아몬드사에 입사해 오늘날 세계적인 벤처기업가로 명성을 얻고 있지만 대부분이 미국 현지사정과 영어에 능통해 연구개발에 필요한 각종 자문과 현지 마케팅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이처럼 제법 알려진 기업 외에도 다수의 한국인 벤처기업들이 있다. 부품업체로는 ASIC(주문형반도체) 라이브러리 개발을 하는 아스텍테크놀러지가 대표적이다. 신재풍 사장이 설립한 이 회사는 연간 2천∼3천만달러의 매출액을 올려 조만간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할 예정으로 준비중이다. 또한 삼성전자에서 D램을 개발했던 박용의 박사가 설립한 IML사, 최규현 사장이 설립한 소프트 디바이스, LG출신 정정 사장이 창업한 마이크로디바이스테크놀러지 등이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또한 김진국 사장이 사운드 칩을 만드는 AD MOOS사를 설립한 것 등을 비롯해 10여개 벤처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중 IML사는 미국 투자회사인 인베스타가 유일하게 한국계 벤처기업에 투자한 업체로 CD롬컨트롤러칩 디자인 회사이다.
이처럼 한국계 벤처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국내 기업들의 진출도 활발하다. 이미 삼성전자, LG반도체, 현대전자, 삼보컴퓨터를 비롯해 해태전자, 대영전자 등이 진출해 있으며 최근에는 벤처기업들의 진출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기업들이 앞다투어 실리콘밸리에 자리를 잡고 신기술개발과 새로운 사업개척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삼성과 현대는 실리콘밸리 현지버인을 내세워 위성통신과 위성방송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새너제이에 이웃해 있는 삼성전자 연구법인(SISA)과 현대전자 미주법인(HEA)은 위성분야에서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불꽃튀는 자존심경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은 미국 최대의 디지털위성방송인 디렉트TV방송을 볼 수 있는 수신기(세트톱박스)를 개발하고 지난해 7월부터 판매하기 시작했다. 삼성은 특히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와 위성을 이용한 인터넷서비스를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대전자 미주법인은 자체개발한 위성방송 수신용 세트톱박스를 유럽지역에 수출하고 있다. 현대전자는 실리콘밸리에서 위성사업분야에 대한 1년여의 실험과 검토를 마친 그에 위성을 이용한 회선임대 사업에 진출했다.
이밖에 삼보컴퓨터도 실리콘밸리에서 PC용 위성방송 수신카드 제작과 관련 소프트웨어개발을 시작했으며 멀티미디어전문기업인 두인전자도 실리콘밸리에 벤처기업 E4사를 설립, PC에서 각종영상을 처리하는 종합영상카드제작과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용 키트, 위성방송을 PC를 통해 볼 수 있는 위성방송용 수신기 카드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국내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위성관련 사업에 열중하는 이유는 이 지역에서 인정받아야만 미국시장 진출을 약속받을 수 있기 때문. 실리콘밸리가 일종의 통과의례의 시험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또 이곳에 나와봐야지만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업과 정보를 나누고 협력관계를 맺기 쉬운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벤처기업으로는 이동통신기기업체 스탠더드텔레콤을 꼽을 수 있다. 무선호출기전문업체인 이 회사는 지난 96년 7월 샌타클래라시 비즈니스 파크에 연구소를 설립, 유럽형 디지털(GSM)휴대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게임개발업체인 마리텔레콤은 지난해 7월 국내 게임업체로는 처음으로 실리콘밸리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해 3차원 온라인 멀티미디어게임개발에 나섰다. 온라인게임 「단군의 땅」으로 국내 게임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이 회사는 미국첨단기술을 습득하고 영문, 한글 동영상 게임을 동시에 개발해 미국등 세계시장을 장악한다는 거대한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또 인터넷 팩스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스탠포드소프트웨어, 청호테크놀러지 등 통신분야 벤처기업 4개사가 새너제이 시내의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센터에 입주해 활동중이다.
특히 국내 벤처기업가로서 성공을 거둔 서두로직의 유영욱사장도 최근 마이캐드 툴 판매및 개발을 목적으로 실리콘밸리에 교두보를 마련, 본격적인 활동 채비를 갖추고 있다. 멀티미디어보드를 개발, 판매하는 다림시스템은 지난해 8월 새너제이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멀티미디어제품 판매에 나섰으며 의학영상정보시스템업체인 아펙스시스템도 이곳에 지사를 세워 지능형 의학영상정보시스템(PACS)를 판매하고 있다. 네트워크업체인 테라도 현지 연구인력을 최대 20여명까지 늘려 차세대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벤처기업들이 이곳을 선호한느 것은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밀집해있고 3개월이내에 회사설립을 마칠 수 있으며 잘만하면 에인절(벤처투자가)의 지원을 받을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이처럼 국내 기업들이 자리를 서서히 뿌리를 잡아가면서 한국소프트웨어진흥협회는 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아 새너제이 인터내셔널 비즈니스센터에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10여개를 입주시킬 계획으로 현재 미국 관련기관과 접촉중에 있다. 이들은 이곳 건물에 입주해 멀티미디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첨단기술력과 마케팅을 배워 세계시장에 도전장을 던질 계획이다.
이같은 시도가 성공을 거둘 경우 벤처기업들의 실리콘밸리의 진출은 향후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수잔해머 새너제이시장이 지난해 10월 한국을 방문, 강봉균 정보통신부 장관을 만나 한국업체의 실리콘밸리 진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세너제이시가 한국과 실리콘밸리의 왕성한 교류를 이유로 올해중 서울-세너제이간 비행기 직항로 개설을 추진중이기도 하다.
서두로직 유영욱 사장은 국내 벤처기업들의 실리콘밸리에 진출하는 가장 큰 이유로 『세계 정보통신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실리콘밸리는 단순한 기술개발 연구단지가 아니라 마케팅과 사교,연구자문을 한꺼번에 구할 수 있는 최적지이기 때문』으로 꼽는다. 실리콘밸리가 기업체들의 모여있는 단순한 개념의 공업단지가 아니라 인적, 물적, 기술력 등이 집결해 있는 천혜의 벤처파크라는 말이다.
국내 벤처기업들의 실리콘밸리 진출이 활발한 것은 21세기 세계 정보통신, 멀티미디어 시장의 대세를 장악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풀이된다. 특히 「멀티미디어, 정보통신」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산업의 개념이 아니라 지구촌 모든 사람의 생활로서, 문화로서의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는 가운데 이뤄지고 있는 것이어서 이들의 노력은 국내 벤처기업의 개념을 송두리채 빠꿀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실험으로 될 것이 분명하다.
<김상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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