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Ⅱ-21세기를 준비한다] 우리를 부르는 새 시장

21세기 수출한국을 건설하기 위한 전자업체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21세기 개방화시대에서 내수와 수출의 개념이 사라져 안방에서조차 외산제품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국내 전자업체들에게 수출은 곧바로 기업의 생존문제이기 때문이다.

국내 전자업계가 앞으로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전개할 것임을 예고해주는 것은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 종합전자 3사가 지난해 연말 인사를 단행하면서 부사장급 이상의 중량급 인사들을 대거 해외에 전진배치한 것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들 전자 3사는 아예 해외사업 본부를 해외 본사로 격상시키고 독립채산제로 운영함으로써 오는 21세기에는 세계 각지에 또다른 삼성과 LG, 대우를 만들어가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수립,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원과 인력이 한정된 만큼 전자업계에서는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지만 막대한 잠재수요가 있는 지역이나 현재 진출해 있지만 상대적으로 시장점유율이 낮은 지역 등을 우선 공략대상으로 꼽고 있다. 또 수출품목도 기존 단순 물량확대 위주의 중저가 제품 수출에서 탈피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각 지역별로 특화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해 틈새시장을 공략하거나 부품에서 완제품 또는 이를 묶은 대형시스템사업 수주를 통한 수출확대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선 아직까지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시장을 선점함으로써 수출확대가 가능한 지역으로는 CIS, 동구, 베트남 등 자본주의가 본격 정착되기 시작한 국가들을 꼽고 있다. 정보통신업계에서는 이들 국가가 상대적으로 통신 인프라가 취약하고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을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서 앞으로 개척해야 할 시장 1순위로 꼽고 있으며 가전업계 또한 이들 국가들이 활발한 자본주의 도입으로 시장경제가 형성되기 시작한데다 자국시장 보호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현지생산을 통한 수요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CIS나 중국 모두 기술부족으로 단일제품 수입보다도 사회 인프라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 턴키베이스에 의한 대형시스템에 대한 수요창출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돼 국내 전자업체들로서는 부품에서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컨소시엄을 구성, 공략하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으로 전망된다.

가전업계에서도 이미 CIS나 중국에 대단위 생산공장뿐만 아니라 판매법인을 속속 설립해 본격적인 시장개척에 나서고 있으며 이들 생산기지를 인근 주변을 공략하기 위한 생산거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 LG전자, 대우전자가 카자흐스탄, 헝가리 등 동구권지역에도 대단위 가전생산공장을 설립, 현지생산을 통해 현지국가는 물론 인근의 슬로바키아, 헝가리, 체코 등의 신시장을 개척해나간다는 것.

부품업체들도 통신 및 가전 관련 완제품업체들의 생산시설이 속속 들어서면서 이들 공장에 납품하기 위한 생산라인을 설치, 국내 업계간 협력을 통한 효율적인 수출체제를 갖춰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기, LG전자부품 등 종합 전자부품 업체들이 지난해 중국공장 가동에 들어간 데 이어 극광전기, 대영 등 AC콘덴서 업체들도 중국 생산확대를 꾀하고 있다. 대우전자부품 역시 폴란드공장을 포함해 5개국, 8군데에 이르는 현지공장을 정상화한 데 이어 해외 현지공장 건설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전세계에 폭넓게 퍼져있는 이들 현지공장을 판매망으로 적극 활용한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CIS를 비롯해 중국, 동구, 베트남 등에 이어 국내 전자업체들이 또다른 거대시장으로 눈독을 들이고 있는 지역이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지역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들은 경제가 안정되면서 소득수준이 높아져 지고 소비패턴이 고급화되고 있는데다 이미 국산 가전제품과 자동차가 현지 소비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고 있어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크게 유리할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정보통신업계에서는 이미 전국에 17개 통신사업자를 선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브라질에 각각의 컨소시엄을 구성, 수주전에 나서고 있으며 17개 지역 가운데 한두 군데만 서비스권을 따낼 경우 이를 발판으로 칠레 등 인근 지역으로의 진출이 한결 쉬워질 것으로 예상했다. 가전업계도 이같은 시장상황을 감안해 브라질에 대단위 생산공장을 건설했으며 최근에는 물류기지 및 판매와 서비스망을 구축하고 고급브랜드 이미지를 심기 위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오히려 국내 가전업계간 치열한 시장점유 확대 경쟁으로 제살깎아먹기식 경쟁마저 우려되기 때문에 국내업체가 효율적인 시장공략전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은 세계 최대 시장이지만 국산제품의 품질 및 가격경쟁력, 마케팅 능력이 뒤져 그동안 감히 넘보지 못한 시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전자업체들은 이들 선진시장을 공략하지 못할 경우 영원한 2류 상품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 아래 최대 시장인 이들 선진시장을 노크하기 시작했으며 오는 21세기에는 이들 지역에서도 국산제품의 시장점유율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일단 환율인상으로 가격경쟁력이 크게 회복된데다 청소기, 전자레인지 등 일부 가전제품과 CD롬 드라이브, 모니터 등 컴퓨터 주변기기 등에 대한 품질을 현지인들에게서 인정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같은 자신감은 미국 및 일본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대만 및 중국, 동남아산 제품들에 비해 가격대 성능비가 높은데다 이들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마케팅이 점차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분석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전자업체들은 이들 국가에 대해서는 저가상품보다는 디지털제품 등 기능 및 성능을 앞세운 고가상품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해나간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그동안 글로벌화를 적극 추진해온 국내 전자업계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곳은 이제 거의 없다. 일부 지역에서는 국산 전자제품이 시장의 절대 다수를 차지해 수출한국의 성가를 높여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경쟁국가 기업들이 진출하지 않았거나 채산성이 없어 기피하고 있는 오지에서 출혈을 감수하면서 수출물량을 확대해왔던 과거의 수출관행에서 탈피하는 것이 21세기를 준비해야 하는 국내 전자업체들의 자세다. 특히 전자상거래가 본격적으로 정착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경우 과거의 발로 뛰는 인적, 물적 공세는 헛된 노력으로 그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전 세계 소비자가 신제품 출시와 동시에 제품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같은 가격으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21세기 개방화, 정보화 시대에서 신시장이라는 단어는 점차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결국 전 세계 어느 제품보다도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개발하는 것만이 국내 전자업체가 다가오는 21세기에 수출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인 셈이다.

【양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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