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특강] 디지털 영상 미디어

姜泰完

84년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86년 경희대 대학원 언론학 석사

93년 독일 뮌스터대학 언론학 박사

94년∼현재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역서 「문화커뮤니케이션론」외 다수

현대는 「이미지의 시대」로 불린다. 또 이미지가 자기 복제하는 「시뮬레이션의 시대」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폭주하는 이미지의 홍수현상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핵심적인 개념은 「디지털 약호」와 「미디어 테크놀로지」다. 시간과 공간을 압축시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매개체의 역할을 미디어가 맡고 있다면, 이같은 시공간을 이동하는 대상이 이제 더 이상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디지털 기호라는 것이다. 특히 정보사회의 진입과 함께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디지털 미디어의 편재성은 사회 전반적으로 크게 「우려」와 「기대」로 엇갈린 반응을 얻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 기술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은 일찍이 벤야민에 의해 진단된 바 있다. 그는 『대중매체 시대에 복제기술의 발달로 원본이 지닌 물리적 실체의 권위(아우라)와 지식과 정보에 대한 배타적인 접근을 통해 야기된 지식권력이 소멸하고 원본과 진배없는 복제본의 무한한 확산을 통해 인류의 유산인 지식과 정보가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점유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모든 사회의 구성원이 의사소통의 미디어를 접할 수 있게 됨으로써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의 자유를 통한 문화의 민주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대중매체의 잠재적 파워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으로 근대이후 사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관점들은 무엇보다도 미디어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매개권력에 대해 경계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현대인들의 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의 영역이 갈수록 위축되어 가고, 이에 반비례해 미디어에 의해 중재되는 간접경험의 정보들이 사람들의 인지세계를 장악하면 할수록 자기증식하는 미디어의 이미지들은 어느 순간 「현실에 대한 그림자」로서의 스스로 위치를 망각하고 「현실보다 더 그럴듯한 현실」로서의 가상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오늘날 우리 경제가 겪고 있는 「IMF위기」도 따지고 보면 문민정부 5년동안 추구되어온 「세계화」 상징구호의 시뮬레이션 효과가 야기한 재난에 다름아닌 것이다.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상반된 두 관점이 일견 상황에 대한 단순화와 극단화로 치닫는 감이 없지 않지만 미디어 테크놀로지 자체에 이같은 두 얼굴의 잠재력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미디어 자체가 단일변수로서 우리 사회에 긍정 혹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리라는 기술 중심적인 사고보다는 오히려 이같은 양면성을 지닌 기술을 여하히 활용하는가에 따라 이른바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보다 적극적인 전략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정보시대의 지배적인 화두는 「멀티미디어」다. 멀티미디어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기존에 전혀 다른 코드로 서로 분리되어 운영되었던 미디어의 장르를 해체하여 디지털 약호로 통합시키는 새로운 미디어기술을 의미한다. 전자적 정보를 기반으로 한 이진법 논리를 기반으로 신문과 출판, 영화와 TV, 방송과 통신 등의 이질적인 영역이 단일 체계하에서 운영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멀티미디어의 등장으로 기존의 매체 장르를 통일하는 하드웨어상의 가능성이 개척되었다고 한다면, 인터미디어란 해체된 매체장르 속에서 새롭게 정의된 미디어의 소프트웨어적인 잠재력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멀티미디어를 기반으로 하여 기존의 미디어로부터 탈맥락화하고 재해석된 뉴미디어를 중심으로 새로운 의사소통 가능성을 인터미디어가 개척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잡종매체」 혹은 「제3의 매체」로서 인터미디어의 가능성을 모색했던 시기는 60년대 말이며 기술적으로는 비디오 카메라의 등장에서부터 출발한다. 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텔레비전이라고도 할 수 없지만 예술로서의 영화와 대중문화로서 텔레비전의 양면성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비디오의 등장으로 당시의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들은 이 「잡종매체」를 통해 예술의 정신을 텔레비전이란 강력한 매체에 구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 일련의 실험적인 작품들을 내놓게 된다.

물론 이같은 인터미디어의 초기실험은 대중매체의 폐쇄성과 대중적인 수용의 좌절을 통해 실패하였지만, 기존의 장르가 해체되는 임계지점에서 새로운 제3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실험은 오늘날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통신과 방송의 융합을 통한 「인터미디어」로서의 「인터넷」의 등장,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의사소통의 생산과 소비를 아우르는 「생비자(prosumer)」의 출현 등일 것이다.

이처럼 멀티미디어에 기반을 둔 인터미디어의 활용 가능성을 통해 다가올 정보사회에서 문화는 새롭게 정의될 시점을 맞이하고 있다. 대중매체 중심의 근대사회가 문화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문화생산자와 문화향유자의 뚜렷한 구분, 예술과 대중문화의 이분법이 지배했던 시대를 의미한다면, 디지털 코드에 통합된 새로운 미디어의 도입에 따라 미디어 생산력 발전의 기술적 합의를 짚어보는 공학적 관심과 미디어 콘텐츠를 좌우하는 인문학적인 상상력, 나아가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시도되는 새로운 미디어의 예술적 표현을 실험하는 매체예술의 창작력 등의 현상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 인문, 공학, 예술 등의 전영역에서 활용되는 미디어의 잠재력을 개발함으로써 정보사회에서는 문화의 우산 아래서 수학적 정보이론의 엔트로피 개념이 예술작품의 미학적 약호와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비트(Bit)에 내재된 공학적 이진법 논리가 우리 문화 속에 내재된 이항대립적인 디지털 약호와 연계될 수 있게 됐다.

특히 디지털영상은 장르 통합적인 인터미디어의 새로운 문화적 활용가능성을 개척하는 첨단 분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영상을 구현하는 기술적 하부구조는 의심의 여지없이 멀티미디어다.

그러나 이미지와 음향을 디지털적으로 축적하고 재생, 가공하는 기술을 기반으로 실사뿐만 아니라 2, 3차원 애니메이션까지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는 미디어의 의미는 이같은 기술적 차원의 외연을 넘어서고 있다. 디지털 영상을 매개로 하여 공학과 예술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대중매체의 시대에도 여전히 소수에게만 국한되었던 문화 생산영역의 장벽이 허물어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문화가 개방적인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는 시점에서 디지털 미디어를 표현수단으로 삼은 영상은 이제 문자언어 다음의 제2의 언어로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리라는 기대다.

이미지 중심의 시대에 문화 창의력은 결국 디지털 미디어의 활용을 통한 영상언어의 표현능력을 통해 확장될 수 있으며,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의 문화잠재력의 개발 가능성 여부가 좌우된다고 본다. 특히 21세기의 창의적인 전문영역으로 부각되고 있는 정보, 광고, 멀티미디어, 디자인, 애니메이션 등의 영상 중심의 활동분야에서 이같은 디지털 영상의 언어적 활용은 필수적인 것이다.

디지털 영상을 문화산업에서의 중심축으로 활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몇가지 전제가 요구된다. 첫째로 디지털 영상언어에 내재된 규칙과 활용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언어가 구문론, 의미론, 체계론 등과 같은 영역으로 세분화하여 꾸준히 연구되어온 것과 같이 영상언어 역시 보다 엄밀한 학문적 분석을 통해 그 실체를 파악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특히 언어분석에서의 화행론처럼 영상언어 역시 발화 속에서 수행되는 규칙성을 밝혀내는 동태적인 분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70년대 이후 정보이론 관점에서 실험되고 있는 예술정보의 사이버네틱스 연구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이를 통해 영상예술의 구조를 드러낸다는 학문적 의미 이외에 영상에 대한 인터페이스를 단순화하여 누구나 영상을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결국 디지털 영상에 대한 이같은 화행론적인 분석은 우리 사회의 평균적인 사람들의 영상수사학을 개발시켜 주는 잠재력으로 인해 디지털시대의 이론과 실천을 매개하는 직접적인 동인이 되리라는 전망이다.

둘째로 실험적으로 생산된 디지털 영상에 대한 일정한 시장의 형성이 관건이라고 하겠다. 60, 70년대의 비디오예술실험이 실패로 돌아간 데에는 무엇보다도 매체에 대한 접근의 길을 확보하지 못한 데 일차적인 원인이 있었다고 할 것이다. 오늘날의 매체환경은 당시와 비교해 보았을 때 훨씬 다원적인 구조를 안고 있다. 영화나 방송과 같은 전통적인 매체들과 나란히 케이블이나 위성 그리고 인터넷과 같은 뉴미디어의 서비스와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브로드캐스트(broadcast)와 특정 수용자를 대상으로 한 내로캐스트(narrowcast), 나아가 몇몇 소수만을 위한 포인트캐스트(pointcast)의 가능성까지 열려져 있는 상태다.

따라서 이같이 다원화된 미디어 구조를 여하히 합리적으로 재편하느냐에 따라 디지털 영상실험의 성공여부가 좌우될 수 있는 것이다. 기존의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 사이의 균형잡힌 역할분담과 이를 통한 미디어 구조 전반의 합리적이고 다원적인 재편이 이루어진다면 영상산업의 하부토대로서 창의적인 영상인력 육성을 통한 영상문화의 전반적인 수준 제고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독일의 매체미학자 뢰처가 선언한 대로 디지털시대에는 더 이상 문화의 방관자는 있을 수 없다. 매체와 수용자 사이에 놓여졌던 일방향적인 간극을 뛰어넘어 전통적인 수용자들이 이제는 자기 표현하는 적극적인 참여자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좌우하는 관건은 이같은 새로운 의사소통의 사회 속에서 영상언어의 표현수단이 되는 음악, 미술, 공학 등의 문화 테크놀로지들과 이같은 그릇에 담기게 될 인문학적인 콘텐츠(contents)를 공학의 테크놀로지를 수단으로 연계해 나감으로써 통합 매체시대에 걸맞은 영상언어를 개척해 나가는 데 달려있다.

결국 영상시대의 주역이 될 창의적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영상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창의적인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이같은 미래문화의 능동적인 주체를 육성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디지털시대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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