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박 대리는 즐겁다. PC통신에서 만난 스물다섯 살의 여인 「밤안개」와 사이버 러브에 근 한달째 빠져있기 때문이다.
진작 전화통화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박 대리는 조심스러웠다. 자칫 성급하게 행동하여 통신에서 만난 여인을 우롱하는 「사이버 제비」로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참을 수 없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 그전에 그녀를 만나야만 한다. 그리고 그녀와 나란히 팔짱을 낀 채, 오색등이 반짝이는 거리를 활보할 것이다.
불꽃남자:저어∥
밤안개:네, 말씀하세요.
불꽃남자:밤안개님을 이제 한번 뵙고 싶습니다. 이렇게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말입니다.
밤안개:그건, 좀∥
불꽃남자:절 믿으신다면 이번 주말에 꼭 뵙고 싶습니다. 제발 나와주십시오.
밤안개:불꽃남자님, 그전에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불꽃남자:네?
밤안개:어쩌면 기분 나쁠지도 몰라요.
박 대리는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 속에는 많은 생각들이 교차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부지게 먹었다. 그녀가 어떤 고백을 하건 모두 이해하고 감싸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불꽃남자:뭐든 말씀하십시오. 저는 놀라지 않겠습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밤안개:그럼 용기 내어 말씀드릴께요. 사실은, 저는 불꽃남자님을 속였어요.
불꽃남자:네에에에!
밤안개:죄송해요.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나이를 그만∥ 제 나이를 사실대로 말하면 모두들 놀아주질 않아서요. 저∥ 사실은 스물다섯 살이 아니라 서른다섯 살이에요.
뜨악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주시하던 박 대리. 조금은 충격적인 이야기였지만 오히려 안도하는 마음이 더욱 많았다. 까짓 세 살 연상의 여인이면 어떤가.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마음이∥.
박 대리는 흐뭇한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그런 것은 개의치 않습니다. 밤안개님의 진실된 마음이면 충분합니다』라고 타이핑을 한 후 엔터를 쳤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모니터의 스크롤은 더이상 올라가지 않았고 시스템이 다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아니, 이거 왜 이런 것이여, 시방! 으째 전화가 요상한 소리만 나구 걸리질 않는다냐, 고장이다냐.』
박 대리의 어머니가 전화를 쓰기 위해 수화기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아악! 엄맛! 지금 뭐하시는 거예욧?』
『얼레? 니는 뭣땀시 이 어미한티 눈깔 똑바루 치켜뜨구 그런다냐?』
『아, 글쎄, 이제 수화기좀 내려놓으시라니까요!』
『저누미 가라는 장개는 안가고 지 에미한테 꼬장을 부리는겨 뭐여?』
『장가갈려고 그러는데 엄마가 지금 훼방놓고 계시잖아욧! 컴퓨터 써야 한단 말이에욧!』
『머야? 장개를 간다고? 근디 콤쀼따랑 몬 상관이냐? 니 콤쀼따랑 장개가냐? 워매∥, 전자파인지 몬지가 나와서 사람을 요상하게 맹근다카드만 니가 꼭 그짝인갑다!』
수화기를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 어머니를 간신히 만류한 박 대리는 부랴부랴 PC통신에 재접속을 시도하였지만 밤안개는 이미 사라지고 전자메일 한통만 남아있었다.
『불꽃남자님, 미안합니다. 비록 거짓말을 했지만 불꽃남자님을 만나 그동안 정말 즐거웠어요. 나도 모르게 불꽃남자님을 애인처럼, 연인처럼 생각하며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렇게 아무런 말 한마디 없이 접속을 끊고 나가시다니, 무척 놀라셨군요. 화를 내셔도 이해합니다. 저라도 그랬을 거예요. 슬프지만, 이제는 PC통신을 하지 않으렵니다. 불꽃남자님과의 그동안 일들, 좋은 추억으로 가슴에 담고 아이디를 해지하렵니다. 행복하세요. 이제 더이상 접속하지 않겠습니다.』
가슴이 찢어지는 박 대리∥. 서글픔과 아쉬움을 안고 ID 밤안개의 접속여부를 몇번이고 조회하였지만, 그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기필코 전화를 한 대 더 신청하리라! 그리하여 모든 불운에서 벗어나리라!
<황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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