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京洙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연구실장
최근 미국 방문길에 시어즈 백화점을 들른 적이 있다. 올해는 경기도 좋고 사람들도 활기 있다는 느낌을 갖고 들른 그곳은 의외로 한산했다. 다른 백화점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6∼7년 전이나 다름없었다. 당시는 경제도 좋지 않아 그러려니 했으나 이번은 의외였다.
반면 서울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백화점은 세일 기간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백화점 경기도 예년 같지 않다고 하지만 한산해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의 경기는 눈으로 보기에 어제나 오늘이나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수십 년 만에 맞는 호황이라고 한다.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했을까. 미국은 오래 전부터 정보산업에 높은 관심을 보였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그 결과 미국의 정보산업은 어느 국가도 추종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정보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적소유권 보호가 필수적이라고 판단, 행정부를 동원하여 지적소유권 보호의 강화 및 규범의 국제적 통일에 매달렸다.
미국은 7년간의 협상을 통해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안에 지적소유권을 편입시켰다. 또한 인터넷 정보 보호를 위해서 자국의 국내법도 마련하지 않은 채 작년 세계저작권소유권기구(WIPO) 저작권조약과 실연음반조약 체결을 선도하였다. 이들 조약의 체결의 배경에는 지적소유권 보호가 정보산업의 발전과 성장의 첩경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통계도 미국의 호황을 반영한다. 지난 통계이긴 하지만 지난 93년 저작권 산업(소프트웨어, 서적, 음반, 영화, 비디오, 만화영화, 캐릭터 등)의 수출액이 4백58억 달러에 달하였는데 지난 92년 무역 적자가 1천59억 달러에 달하였다고 한다. 저작권 등 지적소유권 산업은 번창하는 사업으로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해왔으니 무역적자 해소의 최첨단에 지적소유권 산업이 버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할리우드 등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지적소유권 산업의 발전은 그저 우리의 탄성을 자아낼 뿐이다. 미국이 전세계 인터넷 호스트의 70%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정보를 거의 독점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거의 모든 정보나 기술 등은 지적소유권 보호의 대상이다. 우리나라가 기술이나 정보, 저작물 도입의 대가로 지급하는 로열티는 매년 급증하고 있다. 개인휴대통신 단말기의 5.25%가 기술 사용료라고 하며,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뛰어든 한 업체의 기술 도입료는 투자액의 15%을 차지한다는 보도도 나온다. 이 두 분야만 연간 1천억원이 넘는 금액이다.
이렇게 창작물을 많이 도입하기 때문에 지적소유권 보호는 느슨할수록 좋다는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의 지적소유권 제도와 권리 의식은 보완해야 할 점이 너무 많다. 최근 지적소유권에 관하여 많은 판례가 나오고 있으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걱정이 앞선다. 보호대상도 가급적 소극적으로 해석하는가 하면 손해배상의 산정도 민법상의 불법행위 이론에 얽매여 권리자의 진정한 보호에 한 걸음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신속한 구제는 지적소유권 보호에 필수적이라 할 수 있으나 이 또한 멀게만 느껴진다. 이러다 보니 「힘있는」 외국의 것은 제대로 대접을 받고 「힘없는」 우리 것은 소홀히 다뤄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권리 의식도 높지 않고 창작물도 빈곤하다. 이러다 보니 더 좋은 창작물은 나오기 힘든 형편이다. 빈곤의 악순환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 해결의 열쇠는 창작자가 쥐고 있다. 창작자들은 보이지 않는 재산을 지키겠다는 권리 의식을 강화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권리를 찾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도 이러한 재산을 보호하겠다는 의욕을 가지고 제도 개선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창작력은 정보사회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고 지적소유권의 보호대상인 창작물의 부가가치는 다른 어떤 것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산업으로서 금융과 같은 서비스가 주저앉아 IMF 구제 금융을 받아야 지경에 이른 것도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개척하기보다는 주어진 일에만 매달리고 창작력을 무기로 삼기보다는 일상의 일을 반복해서는 앞날을 기약할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다. 아직도 우리는 보이는 것, 유형의 물건만이 재산과 부의 축적을 가져온다는 믿음이 아직도 뿌리 깊은 것 같다. 여전히 부동산을 통해서 재산을 증식하고 있다. 시각을 동원해 감지해 낼 수 있는 현상에만 관심을 쏟는다. 반면 보이지 않는 것에는 유난히 둔감하다.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한다. 늦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경쟁에 결코 뒤지지 않는 품성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에게 삶의 의욕을 돋굴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21세기 정보사회가 우리의 눈앞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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