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S 사업자인 한솔PCS와 한국통신프리텔이 지난 4일 상호통합망 구축 및 운영에 관한 전략적 제휴 협정을 전격적으로 체결한 것은 한국적 기업 풍토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차별적인 기업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그 양상마저 전세계로 확대되는 글로벌 시대에 진입하면서 외국의 대형 전자정보업체들은 이미 지난 80년대부터 전략적 제휴관계를 맺어 왔다. PC시장에선 숙명의 라이벌인 IBM과 애플이 손잡는가 하면 가전부문에선 앙숙이었던 미국과 일본, 일본과 유럽업체들이 어느날 갑자기 동지가 됐다.
각 분야에서 정상에 올라 있는 기업들이 굳이 경쟁사에 손을 내밀어 전략적 제휴에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초스피드로 진행되는 기술혁명과 변덕 많은 소비자들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려면 제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고 자금력과 마케팅 능력이 막강한 기업일지라도 혼자의 힘으로는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쟁사라도 혹은 외형이 처지는 기업이라도 손을 맞잡는다면 엄청난 연구개발 및 시설 투자비를 줄일 수 있고 시장 적응력도 높아진다. 결국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 경쟁사간의 전략적 제휴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웬일인지 이들 대형 외국업체들에 비해 어느 하나 앞서는 것 없는 국내 기업들은 말로만 전략적 제휴를 외쳤을 뿐 내용면에서 실제로 이를 감행한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어려워도 라이벌사와 손잡고 이를 함께 극복할 수는 없다」라는 「이상한 고집」이 지배하던 것이 우리의 기업 풍토였던 게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양사의 제휴는 높게 평가 받아 마땅하다. 특히 경제신탁 통치라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이 본격 지원되면서 국내 기업들이 안팎으로 최악의 경영 환경에 처하게 될 시점에 이같은 발표가 나왔다는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IMF 통제시대에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것은 PCS와 같이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업종이다. PCS는 이미 출범 당시부터 과다 사업자 선정에 따른 과잉 중복투자 시비가 끊이질 않았다. 각 사별로 2조원이 훨씬 넘는 투자비를 쏟아붓는 것이 과연 국가 경제 차원에서 바람직한가도 의문이었다.
이 때문에 전후 사정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는 언론이 나서 3사 공용망 구축을 재촉했지만 PCS업체들은 원칙에는 찬성하면서도 교환기간의 호환성 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명해 왔었다.
양사의 제휴는 경쟁이 가장 격화되고 있는 이동전화시장에서 이루어진 첫 케이스여서 그만큼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양사는 이번 제휴로 향후 5년간 설비투자비 8천4백억원에다 인건비와 운영비를 포함하면 약 1조2백억원의 투자비가 절감된다고 밝히고 있다. 긴축 재정과 투자 위축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이 정도의 재원을 절감할 수 있다면 기업들로서는 그만큼 경쟁력 강화를 겨냥한 기술개발에 동원할 전력이 비축되는 것이다.
양사의 커버리지 확대에 따른 기존 휴대폰 사업자에게는 강력한 도전 세력으로 등장하고 PCS 사용자들에게는 양질의 통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도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LG텔레콤을 동참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기왕에 국가 경제 및 IMF 시대에 대응한다는 대국적 논리라면 그동안의 어떤 앙금이나 기술적 문제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 공동의 터전으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했었다.
IMF 시대의 국내기업들은 외국 금융당국의 통제하에 무한경쟁을 벌여야 하는 이중고를 안게 된다. 어느때보다도 슬기로운 대처와 위기 극복의지가 시급한 상황이다. 공멸의 길보다는 공존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고 그런 차원에서 이번 양사의 제휴를 계기로 여타 업종 기업들까지 더욱 확산되기를 기대해 본다.
오피니언 많이 본 뉴스
-
1
[ET단상] 다양한 OS환경 고려한 제로 트러스트가 필요한 이유
-
2
[ET시론]AI 인프라, 대한민국의 새로운 해자(垓子)를 쌓아라
-
3
[기고] 딥시크의 경고…혁신·생태계·인재 부족한 韓
-
4
[보안칼럼]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개인정보 보호와 관리 방안
-
5
[ET시론]2050 탄소중립: 탄녹위 2기의 도전과 과제
-
6
[ET단상]국가경쟁력 혁신, 대학연구소 활성화에 달려있다
-
7
[콘텐츠칼럼]게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수립 및 지원 방안
-
8
[김종면의 K브랜드 집중탐구] 〈32〉락앤락, 생활의 혁신을 선물한 세계 최초의 발명품
-
9
[디지털문서 인사이트] 문서기반 데이터는 인공지능 시대의 마중물
-
10
[여호영의 시대정신] 〈31〉자영업자는 왜 살아남기 힘든가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