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리님, 제발 한번만 도와주이소!』
『안돼! 그런 걸 어떻게 도와! 자네가 알아서 해야지.』
『살려주이소! 분희씨 아이디도 몰래 알아왔심더. 지는 이제 눈에 보이는 기 없으예~! 잠도 안온다 안카능교.』
사정은 이러했다. 경상도 총각인 후배 사원 맹진국.
총무과의 이분희라는 여직원을 짝사랑하는 그는 그녀가 점심 시간마다 PC통신을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신은 컴맹이자 넷맹이었기에 박 대리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이다.
『좋아, 이번 한번뿐이야. 다음에는 절대 안돼! 알았지?』
이윽고 점심 시간. 박 대리는 느긋한 마음으로 PC통신에 접속을 시도하고는 「BUNHEE」라는 아이디의 접속 여부를 조회했다. 예상대로 그녀는 대화실에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예쁜여우라는 대화명을 달고 있는 이분희씨가 자신의 대화실로 불꽃남자 박 대리를 초대하는 것이 아닌가? 일이 잘 풀리려는 신의 계시일지도.
예쁜여우:안녕하세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불꽃남자: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장인이신가요?
예쁜여우:네, 지금 점심시간이라 잠시 쉬는 중이에요.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갔지만 서로 자기 소개는 피했다. 만약 소개를 하게 될 경우 같은 회사 직원이라는 사실이 들통날 테니까.
예쁜여우:불꽃남자님은 애인 있으세요?
「오호? 이것 봐라?」하며 예쁜여우 이분희의 당돌한 질문에 깜짝 놀라는 박 대리.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불꽃남자:없습니다! 하하∥ 그래서 퇴근해도 집에 일찍 들어가지요. 주말에는 방글라데시나 방콕으로 여행을 합니다. 아니면 지구를 떠받치고 있지요. 슈퍼맨이거든요. 어떻습니까? 괜찮으시다면 제가 오늘 저녁 대접을 하고 싶은데요.
예쁜여우:좋아요. 맛있는 저녁 기대할게요!
의외로 예쁜여우 이분희와의 약속은 쉽게 이루어졌다. 옆에서 지켜보던 맹진국은 너무도 기쁜 나머지 눈물까지 글썽였다.
『박 대리님,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을낍니더.』
『알았어! 알았어! 이 쪽지나 갖고 가봐. 약속 시간이랑 만나기로 한 장소야!』
다음 날 아침, 출근 후 커피 한잔을 마시며 신문을 뒤적이던 박 대리에게 맹진국 사원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아이고마, 이를 우짭니꺼? 큰일났심더. 글쎄 말입니더, 제가 약속 장소에 나가보니께 이분희씨가 아니고 감추자씨가 있는 거 아니겠심니꺼?』
『뭐야? 그 폭탄이 거길 왜?』
『글쎄 그기 말입니더, 우찌된 기냐 카믄∥』
요즘 비상식적이고도 몰지각한 이런 말이 있다. 무식한 것은 용서해도 뚱뚱하고 얼굴 못생긴 폭탄 여성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그런데 감추자씨는 올해 서른 살 빡빡한 노처녀로 엘리베이터만 탔다 하면 「삐이익」하는 경고음이 울린다고 삑순이라는 별명까지 달고 있었다.
어쨌거나 감추자씨는 공교롭게도 박 대리를 짝사랑하고 있었고 이를 보다못한 이분희씨가 자신의 아이디로 박 대리에게 접근을 시도해 도와주려 했던 것이다.
『감추자씨가 솔직히 말했심더. 박 대리님인 줄 알았다카믄서 자기는 목숨 걸었답니더. 앞으로는 강력하게 대쉬할끼라고 했심더!』
맹진국의 말을 들은 박 대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잠시 앉아있다가 하늘 높이 두 팔을 벌리며 이렇게 외쳤다.
『신이시여! 저를 폭탄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 이 어려운 역경을 헤쳐나갈 용기와 지혜를 내려주소서!』
<황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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