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마이크 피기스 감독 「원 나잇 스탠드」

이제는 슬슬 따분함을 느끼는 당신의 짝을 바꿀 수 있다면.

마이크 피기스 감독에게 「사랑」의 해답은 「가족」이라는 현실보다 「운명」에 더 가깝다. 할리우드 영화계의 외면으로 16㎜ 저예산으로 만들어야 했던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자 그는 다시 할리우드와 손잡고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이러한 행운이 오히려 그를 혼란에 빠뜨렸을까. 감독은 이 영화에서 너무 많은 것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에이즈를 통한 인류애에서 인종을 초월한 사랑과 섹스까지. 주제를 둘러싼 다양한 키워드가 가져다주는 산만함이 불행히도 영화가 지닌 장점을 희석시킨다.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에서 그가 불가피하게 선택해야 했던 「거친 화면」이 오히려 관객들을 열광시켰다면 「원 나이트 스탠드」는 감독의 지나친 욕심으로 특유의 감성적 멜로가 힘을 잃고 있다. 그가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세련됨과 스타일은 마치 너무 많은 나물이 들어간 비빔밥같다.

LA에서 CF감독으로 성공한 맥스(웨슬리 스나입스 분). 그는 두 아이와 아내가 있는 가장이다. 뉴욕 출장중 길이 막혀 비행기를 놓치게 되자 그는 호텔에서 우연히 만난 아름답고 지적인 카렌(나스타샤 킨스키 분)과 하룻밤을 보낸다. 그로부터 1년 후, 맥스는 친구인 찰스(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가 에이즈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 미미와 함께 다시 뉴욕으로 온다. 그곳에서 찰스의 형, 버논을 만나게 되고 버논의 아내가 바로 그가 1년 전 뉴욕에서 하룻밤 사랑을 나누었던 카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의 결론. 찰스는 죽으면서 맥스에게 「인생은 오렌지다」라는 말을 남기고, 찰스의 유언대로 형 버논은 장례식 대신 파티를 열게 된다. 그곳에서 맥스는 카렌과 만나 자신들의 식지 않은 사랑을 확인하고 버논 역시 맥스의 아내 미미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그 뒤 다시 1년 후, 두 부부가 나란히 앉아 예전처럼 식사를 하고 관객들은 이들의 대화에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삶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아직 이 영화의 마지막 유머가 남아있다.

자칫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통속적인 줄거리지만 마이크 피기스는 여기에 그의 장기인 우울함과 화려하고 깊이 있는 색채로 감성을 자극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만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정글 피버」 이후 다시 한번 백인여자와 금기된 사랑을 나누는 웨슬리 스나입스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가 빛을 발하고 감독의 탁월한 음악적 재능이 여전히 돋보이지만 그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의 성공과 스타일 추구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

<엄용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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