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반기술 개발사업이 남긴것]

한국의 반도체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이끄는 단초를 제공했던 것으로 평가되는 「차세대 반도체 기반기술 개발사업」이 이번달 2백56MD램 개발을 끝으로 11년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반도체부문의 국책 개발사업이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반도체기술 개발이 범정부적인 지원체계 속에 국책과제로 선정된 것은 지난 86년 8월22일 「초고집 반도체기술 공동 개발사업」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가를 받으면서부터다. 4MD램 개발을 목표로 시작된 이 국책사업은 정부와 업계 및 국책 연구기관 등 국내 관련기관이 가지고 있는 유효자원을 총동원해 개발의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고안된 프로젝트. 후발업체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업체간 중복투자를 방지하고 연구결과를 공유한다는 원칙으로 사업이 진행됐다.

연구개발 총괄기관은 당시 한국전자통신연구소(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정부기관으로는 당시 경제기획원(현 재경원)과 상공부(통산부), 체신부(정통부), 과기처, 한국통신 등이 참여했고 업계에서는 LG, 삼성, 현대 등 굵직한 대기업이 모두 발을 들여놓았다.

순수연구비 명목으로 책정된 4백억원의 예산 가운데 한국통신이 2백억원, 과기처가 1백억원을 출연했고 기업이 1백억원을 부담했다. 연구기자개 구입예산인 4백79억원에는 상공부의 산업기술 향상자금 2백억원이 지원됐고 업체가 2백79억원을 부담했다. 3년간 총 5백억원이라는 정부지원금은 연간 수조원씩의 매출을 올리는 현재 국내 반도체업체에는 「푼돈」에 불과하겠지만 당시로서는 「가뭄에 단비」같은 생명수였다.

이 사업은 만 3년이 채 지나기 전인 89년 2월에 0.8미크론 4MD램 양산모델 개발을 완료하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정부는 이 프로젝트에 이어 같은 해 4월, 총 4년간의 일정으로 16, 64MD램 공동 개발사업에 착수하게 된다. 특히 두번째 사업은 소자 개발만을 추진했던 4M사업과 달리 장비, 재료 및 원천기술분야를 총괄하는 매머드급 국책사업으로 확장돼 말 그대로 국가적인 프로젝트로 진행되는 전기를 맞게 된다. 참여기관도 9개 기업체, 3개 연구기관, 19개 대학 등 총 31개로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16, 64M 개발사업은 전체적인 구조 면에서 4M와는 크게 다른 모습을 띠고 추진됐다. 개발 프로젝트 자체가 정부 주도에서 기업체 주도로 전환된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4MD램 개발로 메모리분야의 시장성을 확인한 기업체들의 적극적인 자세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된다. 총 1천9백억원의 연구비 가운데 정부출연금은 3분의 1에도 못미치는 6백억원. 1천3백억원의 예산이 업체로부터 나온 것이다.

특히 이 사업은 국내 반도체산업 역사상 또다른 의미를 남겼다. 64MD램 개발을 당초 목표시점보다 4개월여 앞당긴 93년 3월에 완료함으로써 선진국인 미국, 일본과 대등한 기술력을 보유하게 됐다는 점이다.

국책이라는 수식어를 단 마지막 반도체 관련 개발 프로젝트인 2백56MD램 개발사업(차세대 반도체 기반기술 개발사업)은 명실상부한 민간 주도의 사업으로 진행됐다.

총 1천9백46억원의 재원이 투자된 이 사업이 11월로 막을 내리면서 더이상 국책사업이라는 형태의 반도체 개발사업은 존재하지 않게 됐다. 이는 바꿔 말해 국내 반도체업체의 국제경쟁력이 정부의 지원 없이도 충분히 홀로 설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해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정부가 참여한 총 11년간의 반도체 개발사업은 전체적으로 반도체부문의 황무지였던 국내 전자산업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사업 전개과정에서 실적을 의식한 정부의 뻥튀기식 성과주의, 부처간의 불협화음, 기업간의 과당경쟁 등 부분적인 과오가 지적되기는 하지만 반도체산업이 한국의 대표적인 산업으로 발전하는 데 일조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가다.

<최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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