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역의 파괴」 「기종간 경계선 붕괴」 「업체간 무한경쟁 돌입」.
올들어 국내 서버시장에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현상들이다.
그동안 확연히 구분돼 오던 중대형 컴퓨터 및 메인프레임 공급업체와 PC서버 업체들이 기종의 다양화를 통해 서버시장 영역확대에 적극 나서면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치열한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메인프레임의 대명사로 알려진 한국IBM, 한국후지쯔, 한국유니시스 등이 PC서버사업 강화에 나서는가 하면 저가형 유닉스의 대표주자인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가 기종 업그레이드를 통해 대형시장을 넘보는 등 새로운 영역개척에 적극 나서는 것도 이같은 현상의 일면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다 소규모 사무실의 프린터나 파일서버로 주로 사용돼 오던 PC서버가 기능 및 성능을 강화해 기업 전산실용 서버로 영역을 넓혀가면서 기종간의 경계선도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이같은 추세는 올들어 극심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서버업체들이 구사하고 있는 전략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서버업체들은 기업의 업무환경을 최적화할 수 있는 토털솔루션 제공에 역점을 두고 시장확대를 꾀하면서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가겠다는 복안인 것이다.
당초 국내 서버시장은 예년 수준에는 못미치겠지만 나름대로 높은 성장률을 달성할 것으로 업계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그러나 연초 한보사건이 터지면서 발생한 국내 대기업의 연쇄 부도행진은 진로와 기아 등을 거치면서 최근까지 1백대 그룹에 속하는 11개의 기업들이 좌초하고 말았다. 자연히 수출은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내수경기는 크게 위축돼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울 수밖에 없었다.
그 여파로 기업의 설비투자는 물론 전산투자마저 급랭하는 사태에 이르게 됐다. 특히 중대형 서버시장의 노른자위로 불리는 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의 전산투자 집행까지 보류되면서 서버업계에 사상 초유의 한파가 몰아닥쳤다.
경기불황의 여파에 따른 투자심리의 위축으로 올 상반기 국내 서버시장은 총 4천5백억원 규모로 지난해 동기 대비(약 4천억원) 12.5%의 성장에 그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평균 50%를 상회하는 예년의 성장률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같은 추세라면 올해 국내 서버시장은 당초 전망치인 9천억원을 다소 밑돌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기종별로보면 중대형 서버가 3천1백억원, 메인프레임이 9백억원 가량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슷한 시장규모를 형성했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PC서버의 비약적인 성장이다. 극심한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올 상반기 5백억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해 지난해 동기(2백50억원) 대비 1백%의 고성장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전산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수요처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고가인 중대형 서버나 메인프레임보다는 저가기종인 PC서버로 선회한 측면이 강했기 때문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또한 저가에다 사용하기 쉬운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NT가 PC서버의 주력 운용체계로 자리잡으면서 PC서버의 급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요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올들어 서버업체들간의 변화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변화무쌍했다. 메인프레임급 서버업체들이 중소형 유닉스서버시장을 넘보는가 하면 기존 유닉스서버 업체들이 기종을 다양화하면서 제품의 확장성을 대폭 높여 대형서버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메인프레임급 서버사업에 큰 비중을 둔 한국유니시스와 한국후지쯔가 유닉스서버 제품라인을 다양화하면서 이 부문의 시장공략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또 한국IBM을 비롯해 한국유니시스, 한국후지쯔 등도 기존 전용 운용체계 방식의 메인프레임에 개방성을 강조하면서 유닉스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올해 중대형 서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업체는 쌍용정보통신. 이 회사는 비균등 메모리접근(NUMA)방식을 적용해 설계한 시퀀트의 대형 유닉스서버를 공급하면서 중대형 서버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NUMA시스템은 대칭형멀티프로세싱(SMP)방식의 활용성과 초병렬처리(MPP)기법의 확장성 등 두개 아키텍처의 장점만을 모아 지난해부터 중대형 서버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버스 및 메모리기술에 대한 일대혁신을 통해 높은 성능에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대로 공급되면서 일약 대형 서버시장에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올해 중대형 서버시장의 새로운 변수는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움직임을 꼽을 수 있다. 그동안 워크스테이션만을 공급해오던 이 회사가 올들어 「스타파이어(엔터프라이즈 10000.6000)」의 공급으로 중대형 서버시장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실제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는 내무부가 추진한 전자주민증용 시스템으로 자사의 서버를 대량 공급해 관련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국내 유닉스서버시장의 선두주자인 한국HP 역시 올들어 「V2200」을 새롭게 선보이면서 중대형 서버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로써 중대형 서버시장은 올해 새롭게 등장한 NUMA시스템, 스타파이어, V2200의 가세로 기존의 메인프레임 및 한국NCR의 「월드마크 5100」 등과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중대형 서버시장 못지 않게 PC서버시장도 일대 변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기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올해 국내 PC서버시장의 획기적인 사건은 삼성전자의 돌풍이다.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에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에 총 2천3백대를 공급한 것을 비롯해 농협에 7백여대 등 대량물량을 수주하는 데 힘입어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PC서버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해 온 한국컴팩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여기에다 한국HP와 LGIBM 등도 올들어 PC서버사업을 대폭 강화하면서 PC서버시장에서의 입지를 탄탄히 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PC서버시장은 현재 4강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4강구도 체제는 삼보컴퓨터, 대우통신, 현대전자 등 국내 대기업과 기존 유닉스서버 업체들의 적극적인 가세로 인해 앞으로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특히 올들어 국내 대기업들이 PC에 이어 PC서버사업을 대폭 강화하고 있어 PC서버시장을 놓고 국내 대기업과 외국업체들의 주도권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해 PC서버시장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PC서버 제품의 고성능화 추세다. 과거 윈도NT가 인텔 CPU를 최대 4개까지 탑재할 수 있었으나 올들어 4개 이상의 CPU를 채택할 수 있는 이른바 「N-방식」 제품이 잇따라 선보이면서 PC서버의 고성능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전자의 8웨이 방식의 제품을 비롯해 올들어 처음으로 PC서버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한국유니시스의 10웨이 방식의 PC서버와 한국후지쯔가 펜티엄Ⅱ 프로세서를 채택해 공급한 그랜드파워 5000시리즈 등이 이 계열에 속하는 제품군이다.
이같은 고성능 PC서버의 잇따른 출시로 유닉스서버와의 경계선도 갈수록 모호해지면서 유닉스를 기반으로 하는 중대형 서버와의 본격적인 경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전망하에 윈도NT를 주력 운용체계로 채택하고 있는 PC서버가 앞으로 유닉스서버를 급속히 대체할 것이라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향후 윈도NT의 성장가능성과 이를 지원하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들의 등장에 힘입어 윈도NT를 탑재한 PC서버의 공세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국내 서버시장은 윈도NT를 기반으로 한 PC서버와 유닉스를 주축으로 한 중대형 서버업체들의 물고 물리는 치열한 시장쟁탈전이 한층 가열될 전망된다.
상반기에 극심한 수요부진을 보인 서버시장은 하반기들어 다소 안정세를 보이는 양상이다. 특히연 말을 기점으로 수요기관별로 및 올해 쓰다남은 예산을 모두 집행할 것으로 예상돼 반짝호황도 기대해 볼 만하다. 또한 내달에 실시되는 대통령선거도 예년과는 달리 돈 안드는 선거 분위기가 확산됨에 따라 이를 계기로 기업들의 투자확대로 이어질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잇따른 대기업들의 부도로 인해 얼어붙은 투자심리가 되살아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에 따라 올해 전체 서버시장은 전반적으로 불황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되며 경기저점을 통과하는 올 연말을 지나 내년에 접어들어서야 서서히 호황국면을 맞이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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