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B는 보통 외관으로는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으나 제조 공정이나 채용되는 세트의 특성에 따라 내부적으로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따라서 같은 층수, 같은 면적의 제품이라도 실제 원가는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현재 통상 국내 세트업계의 PCB가격 산정 기준에는 단순히 면적(㎡), 층 수 등 일부 항목만이 적용되고 있다. 내용에 상관없이 외관만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철저한 후진국형 가격구조가 수십년 째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페놀 단면, 에폭시 양면 등 범용 제품이 주류를 이루었던 80년대 말까지만해도 원판, 동박 등 일부 핵심 원자재만 차이가 날 뿐 제조 업체별로 PCB사양차가 거의 없어 이같은 전 근대적인 가격구조를 적용하는 것도 별 무리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핵심 소재인 원판과 동박만해도 종류가 무척 다양해졌고 가격차도 적지않다. PCB 자체도 20층 이상의 고다층 제품까지 생산되고 있으며 제품의 경박단소화에 따라 고밀도 파인패턴화 현상이 급진전, PCB업계의 제조원가는 크게 높아져 단순 가격산정엔 상당한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패턴폭 패턴간격의 축소 ▲홀 크기의 소형화 및 홀 수의 증가 ▲금도금 등 특수 표면처리 ▲임피던스 컨트롤 ▲다양한 테스트 등 PCB 제조원가 상승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는 수 없이 많다. 그런데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세트업체들의 원가보전은 미미한 상황이다.
원가보전은 고사하고 PCB 공급가격마저 가파른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단면 가격은 이미 마지노선으로 간주됐던 장당 20달러벽이 무너진지 오래다. 양면도 상황은 마찬가지. PCB업계의 최고 효자품목인 4층기판도 1~2년전 평균 2백달러대에서 현재 1백70달러대까지 떨어졌으며 연성PCB(FPC)도 예외는 아니다.
고부가PCB의 대명사인 BVH(블라인드비아홀)기판과 BGA용 기판, 이동통신단말기 등 경박단소형 제품에 탑재되는 고밀도, 초박판PCB, 테프론PCB, 실버스루홀PCB, 임피던스보드, 번인보드, 샘플PCB 등 이른바 「잘 나간다」는 여러 특수 PCB도 공급가격 만큼은 계속 뒷걸움질을 치고 있다.
PCB가격이 이처럼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은 원판(소재)-PCB-세트로 이어지는 PCB 관련업계의 관계가 수평적인 협력 구조라기 보다는 철저한 수직적인 종속구조로 이루어져 하층부에 있는 PCB나 원판업계의 원가상승분이 세트업계에 제대로 먹혀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세트업계의 강력한 가격압박이 PCB-원판-소재 등 하부에 연쇄적으로 전가돼 전 PCB산업의 체질을 약화시키고 있으며, 원가상승에도 불구하고 가격보전을 받을 수 없는 국내 PCB업계의 후진국형 가격구조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최대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세트업체들과 원판업체들은 주로 대기업들인 반면 그 사이에 낀 PCB업체들은 주로 중, 소기업들이어서 세트업계의 공급가격 인하 압력을 전가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이 때문에 시장지배력이 높고 재정환경이 뛰어난 일부 선발업체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PCB업체들의 채산성은 계속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재와 같은 「먹이사슬」형 가격구조가 방치되고 가격하락이 지속되는 상황에선 PCB산업의 성장과 내실강화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전제, 『전후방 업계의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근대적인 가격구조로 전환함으로써 「부품업체가 견실해야 세트 및 소재업체가 경쟁력을 갖는다」는 인식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중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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