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생각] 사이버 쇼핑과 문화정서

한두달 전쯤이다.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필자의 선배로부터 사업차 의논할 일이 있으니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이 갑작스런 전화에 필자는 「사업」이란 단어가 주는 의미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 보아야 했다. 이 선배는 필자와 자주 왕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도대체 「사업」이란 것을 의논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약속한 날에 이르러 반가운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선배에게 사업내용을 다그쳐 묻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음반과 음악밖에 모르는 구세대 일본 촌 아저씨가 말씀하시는 사업은 한국에서 인터넷이나 PC통신을 이용해 음반을 「사이버 쇼핑」 개념으로 판매하고자 하는 것이다. 필자에게 인터넷 홈폐이지를 개설, 운영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이후 10여분에 걸쳐 선배에게 이 사업이 시기상조임을 이해시켜야 했다. 대기업 기획사와 공동으로 모 백화점에서 만든 사이버쇼핑몰이 기껏 수천만원의 월매출에 그쳐 사업성이 전혀 없는 실례를 드는 것으로 시작해 인터넷 사용자층에 대한 이야기까지 한국내에서 인터넷 사이버쇼핑몰로 돈을 벌어보겠다는 이 선배의 들뜬 구상을 깨뜨리는데 꽤 힘이 들었다. 계속 이 선배는 일본의 환경과 비교해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고 국내 현실을 파악하게 되면서 적잖이 실망하는 것이었다. 일본의 경우 통신환경, 사용자 수 또 매체에 대한 호감도 등 정보통신망을 둘러싼 환경자체가 국내 실정과는 너무도 다르다는 것이었다.

필자 역시 매체를 통해서 얻는 정보와는 달리 일본 시민으로서 갖고 있는 정보통신망에 대한 일본 촌 아저씨(?)의 생각을 듣고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이 선배의 함축적인 말 한마디 「일본에서는 되는데…」 끝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이 선배가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그럼 언제쯤 가능하겠는가?』

우리는 드디어 우리의 온갖 부정적 현실에 대해 우국적 충정(?)에서 열띤 말잔치를 벌이고 말았다. 그쯤에서 음반사업을 하는 선배는 음악의 문화적 종속에 관해 우려했고 필자는 우리나라 정보통신망과 관련된 왜곡된 현실에 대해 몇가지 이야기를 했다. 이를테면 기술종주국이라고 자부한다는 CDMA사업부문에서도 미국 퀼컴사에 1천7백억원에 이르는 기술사용료를 지불한 것부터 시작해 일본만화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일본어를 배운다는 한 고등학생 이야기, 문화개방만 되면 지적재산권, 판권, 기술 수입을 통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벼르는 많은 사람들까지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내용으로 끝을 맺었지만 석연찮은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슷하게 시작한 인터넷인데 일본은 이 정보망을 통해 일개 개인까지도 사업을 할 수 있는데 왜 한국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냐는 것이었다. 그것도 단지 통신망 환경의 열악성이라는 기술적 구조적 인프라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렇게 단순한 이유 때문이라면 지속적인 투자와 기술개발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술종주국이란 자랑 뒤에 말없이 지급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기술사용료가 그렇고 TV에 방영되는 만화영화의 80% 이상이 일본이나 미국 것이라는 것이 그렇다. 앞으로 인터넷이 활성화하면 우리는 더욱 많은 각종 기술, 특허, 지적재산권에 관련된 사용료와 이용료를 지불해야 하고 그것에 종속돼 갈 것이다.

당연하게도 기술적 종속에 따라 기술 우위국에서 자신들의 환경이나 시장구조에 따라 개발된 기술을 쫓아가는 우리는 기술적 낙후라는 비참함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면서 초조하게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꼴이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원래부터 통신판매에 익숙한 미국과 일본이 사이버쇼핑 개념에 쉽게 접근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정서상 즉 물적환경에 익숙해져 있어 통신판매란 개념 자체가 이제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고 보니 그렇게 쉽사리 될 리가 없다. 처음부터 시장원리를 무시한 오류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살 사람이 없는 시장을 만들어내야 하는 초조감, 왜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일까.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도 고부가가치산업인 애니메이션을 해야 한다고 떠들썩한 지 몇 년, 이렇다 할 결과물 하나 없는 마당에 이제 올 겨울에 우리는 애니메이션으로는 전혀 불모지로 여겼던 홍콩에서 제작된 만화영화를 극장에서 보기에 이르렀다. 아직 상영도 되지 않은 이 만화영화의 제작자인 서극은 이제 우리나라 대기업에 후속편 제작에 세계판권의 지분을 전제로 투자를 유혹하고 있다.

우리는 혹시 교향악단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악기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연주자나 지휘자는 그 다음이라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멀티미디어에서 정부나 기업이 주목하는 것은 외관상 포장이 잘된 모양새일 뿐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역시 그런 오류의 한 묶음에 필자 역시 속해 있지 않나 하는 반성을 해본다.

그것이 멀티미디어든 통신사업이든 우리는 사용하는 악기와 연주할 곡이 무엇인가보다는 어떤 이들이 연주하고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인가에 가치판단 기준을 두는 교향악단처럼 인간과 주변환경에 관심을 두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게이브미디어 손동수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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