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경기회복설은 이미 섣부른 것으로 판명났다. 내년 초부터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의 진단도 떫은 감처럼 외면당하고 있다. 연말이 다가오고 있건만 내수가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단지 수출은 사정이 좀 나아지고 있다. 기업의 자금난은 사상 최악이라고 한국은행은 확인해 준다. 기업체들은 수확이 신통찮으니 곳간에 찰 것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불황은 다산(多産)의 신인 가이아처럼 부도를 잉태한다. 올해들어 한보에서 비롯된 부도는 기아로 이어졌다. 벤처기업의 표상이었던 태일정밀이 부도유예협약 대상에 올랐으며 재계 30위 안에 드는 해태그룹, 뉴코아가 화의와 법정관리의 갈림길에 섰다. 이제 부도에는 그룹사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키고 남음이 있다.
올해들어 부도난 업체들은 공통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들에게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모기업을 담보로 자금을 대출해 자회사를 차리고 또 자회사를 담보로 또 다른 회사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는 재무구조를 부실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불황이라는 파고를 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것이다.
우리의 이같은 경영방식은 일본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경기확장기에는 그것이 주효했다. 이를 통해 많은 기업체들이 80년대까지 20∼30년 동안 고도성장을 이뤄냈다. 그런데 일본은 얼마 전부터 그러한 경영방식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보다 한 발 앞서 미국은 사업구조조정을 벌였다. 양(볼륨)보다 질(밸류)을 중시하는 미국의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경영 방식은 일본의 그것과 비교되면서 최근 들어 우위를 나타내고 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 기업도 진정한 밸류경영을 해야 합니다.』 최근에 만난 국내 굴지의 L그룹 부사장의 말이 경영자의 뼈아픈 자성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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