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EU, 아시아산 카오디오 반덤핑 조사 배경과 대책 (하)

유럽연합(EU)이 92년에 이어 또다시 아시아산 카오디오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나선 것은 역내 전자업체들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다시한번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유럽지역의 카오디오 제품가격은 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수출품으로 크게 낮아진 상태. 특히 중국과 대만 등지의 카오디오업체들은 일본으로부터 전수받은 기술에다 저임금 등을 바탕으로 싼 값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어 필립스, 블라우풍크트 등 유럽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 업체들은 중국, 대만산 카오디오와의 가격경쟁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자 결국 반덤핑 제소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낸 것이다.

국내 카오디오업계의 관계자들은 EU의 이번 조사 착수가 92년처럼 상당한 영향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당장 아시아산 카오디오를 수입했던 현지 바이어들의 구매주문이 격감하게 돼 아시아 업체들에 타격을 줄 것이고, EU가 이들 제품에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 경우 중국과 대만 등지의 중소 카오디오 업체들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연쇄도산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같은 수순은 92년 국내 카오디오 업계가 겪었던 과정과 비슷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측된다. 당시 중소기업 중심으로 형성됐던 국내 카오디오업계는 EU가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 움직임을 보이자 생산시설을 중국 및 동남아시아로 대거 이전했으며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엔지니어들이 업종을 전환해 국내 카오디오산업이 크게 위축됐다. 여기에 고율의 반덤핑관세가 부과돼 결정적인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당시 국내 업체 가운데 58개사가 조사대상으로 지목됐으나 이 중 16개 업체만이 심사자료를 제출해 비교적 저율의 개별 마진 판정을 받았으며 EU의 반덤핑 조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나머지 중소 업체들은 34.4%의 고율의 덤핑판정을 받아 대다수 업체들이 이를 견디지 못하고 도산했다. 또 이의 여파로 국내업체들의 유럽 카오디오시장 진출이 좌절되기도 했다.

EU가 아시아산 카오디오에 대해 또다시 반덤핑 조사에 착수한 것은 일본뿐 아니라 중국과 대만 등지의 중소 업체들까지 겨냥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중국의 경우 대부분 중소업체 중심이어서 개별 마진이 아닌 고율의 국가별 덤핑 마진을 받을 확률이 많다는 것이다. 이 경우 중국뿐 아니라 국내 대기업들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우전자, 현대전자 등이 중국에 대규모 카오디오공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카오디오업계에서는 EU의 아시아산 카오디오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대해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업체 가운데 대우전자, 현대전자, 해태전자 등 대기업들은 그나마 92년의 경험을 되살려 사내 통상팀을 가동한다거나 국제 변호사를 선임해 EU측의 동정을 살피는 등의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일단 EU로부터 정식 질의서를 받아봐야 보다 세부적인 대응책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소업체들은 통상변호사 선임에서부터 EU측에 어떤 자료를 제출해야 할 지 등에 이르기까지 대책이 전무한 상태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지금과 같이 EU의 반덤핑 조사에 대해 개별업체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보다 정부적 차원에서 대응책이 나와야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소기업들의 경우 통상변호사 선임은 고사하고 EU가 어떤 방식으로 조사에 착수하는지조차 감을 잡고 있지 못한 곳이 많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전자산업진흥회는 정부 차원의 공동대응 자체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진흥회의 한 관계자는 『진흥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고문변호사를 선임해 EU의 동향파악이나 개별업체들에 대한 자문제공 정도밖에 할 수 없다』며 『중소기업들은 무역협회에서 제공하는 「산업피해구제기금」을 이용하면 그나마 피해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휘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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