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일정밀 좌초 원인과 향후 전망]

가장 성공한 벤처기업으로 알려진 태일정밀(대표 정강환)이 자금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지난 15일 6개 계열사와 함께 부도유예협약대상기업으로 선정됨으로써 관련업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태일정밀은 주력품목인 컴퓨터기억장치용 자기헤드를 비롯해 그동안 주로 컴퓨터 및 정보통신용 부품과 관련기기에 주력, 고성장을 거듭해온 중견업체란 점과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 소재 쌍태전자실업유한공사를 중심으로 세계화에도 의욕적인 사업을 추진해왔다는 점에서 향후 거취가 특히 주목된다.

어떤 회사인가

83년 창업한 태일정밀은 설립 초기부터 HDD, FDD 등 컴퓨터 기억장치용 박막자기헤드와 관련 미디어를 독자기술로 개발,주목을 끌었다. 이후 자기저항(MR)헤드로 이어지는 기술 축적과 국내외적인 PC붐을 타고 고성장을 거듭, 현재 이 분야에 독보적인 업체로 자리잡았다.

태일정밀은 그러나 수년전부터 자기헤드기술을 바탕으로 HDD, FDD 등 컴퓨터 주변기기에 손대면서 부품업체에서 종합정보통신업체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이에따라 컴퓨터, 모니터, 프린터, CD롬드라이브 등 각종 컴퓨터기기사업으로 이어졌고 최근엔 전화기, 팩시밀리 등 통신기기와 백색가전, 산업전자, 정보통신 등 전자산업 전반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태일정밀은 지난해부터 금융(대구종금), 건설(수원역사), 레저(대전동물원), 방송(청주민방) 등 비제조업 분야에 대거 진출하면서 지난해엔 주요 계열사 총 매출액이 9천5백억원에 달하는 중견그룹으로 올라섰으며, 올해는 창업 14년만에 2조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야심찬 목표를 책정한 바 있다.

태일정밀은 이밖에도 핵심부품의 수직계열화를 통한 가격경쟁력 확보라는 기치아래 중국 흑룡강성과 산동성에 각각 쌍태전자, 영성쌍태전자란 현지법인을 설립해 PCB, 저항기, 콘덴서, 수정디바이스, 배터리, 에나멜동선 등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품사업을 전략적으로 추진해왔다.

좌초 원인

잘 나가던 태일정밀이 좌초하게 된 근본적인 배경은 무엇보다도 무리한 사업확장 때문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비제조업 부문을 그것도 한꺼번에 추진하면서 차입금 증가에 따른 자금압박을 받은 것. 특히 태일정밀이 장기적인 재원확보를 위해 추진했던 대구종금 인수가 대구지역 상공인들의 반발로 무산되면서 결정타를 맞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부실기업 인수-계열사 편입-정상화라는 수순을 거치면서 부득이 관계사 매출이 지나치게 많았고, 성장위주의 정책을 펴면서 재고가 누적된 데다 매출채권이 증가해 현금회전율이 현저히 떨어진 것이 올 상반기 금융권에 나돌았던 자금악화설을 더욱 증폭시켰다는 것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태일號의 좌초에는 증권 및 금융계 전반의 악성루머가 최근 일련의 대그룹들의 몰락에 따른 금융 냉각과 맞물린 때문이라는 설도 만만치 않다. 태일은 실제로 지난해부터 부실한 재무구조에 따른 자금악화설과 대표적인 PK(부산, 경남)수혜기업 등 악성루머가 나돌았으며 최근엔 기아협력사로 부도를 낸 중소업체와 상호가 같아 부도설이 확산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향후 처리 전망

태일정밀은 주요 채권은행들로부터 부도유예협약 대상기업으로 선정됨에 따라 향후 2개월간의 경영진단을 거쳐 부분적인 정상화가 이뤄지든지 아니면 제3자 인수든 법정관리 형태든 거취가 판가름나게 됐다. 일단 금융계 및 업계에선 이번에 선정된 7개업체 모두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어떤 식으로든 정상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주력기업이자 상장업체인 태일정밀과 뉴맥스는 주력 품목인 자기헤드가 일본, 미국 등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국제경쟁력과 지명도를 갖고 있고 파급효과가 커 이를 되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경영권 포기각서와 부실사업 정리, 계열사 통폐합, 부동산 매각 등 후속조치가 수반될 것으로 보인다.

정 사장은 누구인가

경남고와 서울대 섬유공학과를 나온 정강환 사장은 PK출신으로 재계에서 가장 성공한 벤처기업가로 잘 알려져 있다.

정 사장은 상공부(현 통산부)를 거쳐 한일그룹에 입사, 80년대 초반 기획실장에 오르기까지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주목을 받았다. 한일그룹을 퇴사, 83년 태일정밀을 창업한 정 사장은 탁월한 경영수완을 발휘하며 설립 14년만에 1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내는 중견그룹으로 키워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타고난 「일벌레」로 알려진 정 사장은 특유의 마당발로 정, 관, 재계에 상당한 인맥을 갖고 있으며, 대외활동에도 적극성을 보여줬다.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면서 행정쇄신위원회 위원, 금융개혁위원회 위원을 거쳤고 현재는 전자산업진흥회 감사와 한국세팍타크로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중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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