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인터넷 정치투쟁 도구됐다

(모스크바=강혜련 통신원) 인터넷 열풍은 러시아를 비켜가지 않는다. 컴퓨터의 보급률이 낮고 정보산업에 대한 국민적 이해가 그다지 높지 않은 가운데서도 인터넷을 비롯한 컴퓨터 통신 이용자들은 꾸진히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아직까지 스몰렌스까야 오블라스찌市의 한 농부가 미국 미네소타주의 농장의 인터넷 홍페이지에 실린 농업관련 정보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 화제가 될 정도의 수준이긴 하지만 인터넷 이용자들의 면면은 이제 전문가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러시아에서 인터넷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컴퓨터 보급의 절대적 부족, 지역 통신체계와의 매끄럽지 못한 접속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지만, 영토의 광대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무선 통신시설이 노후하고 낙후된 러시아에서 인터넷은 폭발적인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부의 이에대한 인지도는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 남부 아조프 해 연안의 작은 도시 타간록에 위치한 한 중학교에서 인터넷을 통해 벌어진 사건은 러시아도 이제 서서히 인터넷의 돌풍속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빠른 발전에 따르지 못하는 러시아정부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내 준다.

임금체불에 항의하며 파업을 벌이던 타간록시의 38호 중학교 교사들은 컴퓨터 강좌에서 하던 방식대로 인터넷에 자신들의 파업 사실을 올렸다. 결과에 대한 별다른 기대없이 막연히 자신들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호소하는 내용을 공고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공고가 나간 바로 다음날 같은 주의 하리꼬프시에 있는 한 학교에서 첫 번째 반응을 보냈다. 그들은 재판에 어떻게 대응하고 시 당국을 상대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자료들을 보내왔다.

공고가 나간 두 번째 날, 사건은 국제적으로 번져 나갔다. 프랑스인 한사람이 접속해 이 학교의 공고내용을 보았고 그는 다시 인터넷을 통해 프랑스의 이용자들에게 이를 알렸다. 서버에 올려진 내용을 보고 프랑스의 관계 당국과 학생들은 매우 놀랐다. 인터넷을 통해 모스크바 주재 프랑스대사관에 이 교사들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들이 쇄도했다. 프랑스대사관은 이에 대한 질문서를 러시아정부에 전달했고 러시아 정부는 공식채널을 통해 타간록시 당국에 이를 보냈다.

논란이 확대되자 시 당국은 밀린 임금의 지불을 위해 2백억 루불을 토스토프시의 「즈비르방크」에서 차용했다. 이는 파업중인 외국어 및 컴퓨터 교사들만이 아닌 나머지 교사들의 체불된 임금을 지불하기에도 충분한 액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보복으로, 격분한 시 행정부의 교육담당관은 컴퓨터실의 프린터를 몰수하고 「정치투쟁의 도구로 인터넷을 활용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기술에 대한 무지와 무대응은 비단 지방 행정부의 한 부서장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러시아정부의 법규 및 관련부서들의 행태도 여기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 인터넷을 비롯한 컴퓨터 통신기술의 발달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국가정보의 방어문제이다. 러시아에서 이를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기구는 암호기기 및 정보의 개발과 이용권을 허가해 주는 「국가기술위원회」와 「정부 통신 및 정보 연방기구」이다. 두기구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역할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다는 비난이 높다.

러시아는 94년 협의에 의해 암호문 관련 분야는 「정부통신 및 정보 연방기구」가, 이를 제외한 다른 정보방어부문은 「국가기술위원회」가 담당하기로 했다. 현재 이러한 분류는 거의 무의미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통합기구의 창설은 쉽지 않은 형편이다. 명확한 지침의 부재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암호기기 및 정보의 개발허가와 사용허가 간의 관계, 러시아 제품과 외국제품 간의 명확한 관계규정이 없는 것이다. 또한 해당 관료들 자신의 첨단정보기술에 대한 무지와 경직성도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전문가들은 러시아 정부의 정보화 지수를 「인터넷의 존재를 아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지방의 한 공무원이 「인터넷은 정치투쟁의 도구」라고 자신있게 외칠 수 있는 것도 러시아 정부의 정보화 수준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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