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알맹이 없는" 멀티 콘텐츠산업 육성책

정부가 또 멀티미디어 콘텐트산업 육성정책을 내놨다. 관련법 규제조항 철폐, 전문업체 적극 지원등을 내걸고 나온 정책이 전혀 신선하지 않아 첫머리를 「또」 나왔다고 표현해야 하는 심정은 다소 참담하다.

다소 격하게 표현하자면 이제까지 정부가 없고 정책이 없어서 산업이 안됐느냐 묻고 싶게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정책은 많았으나 실효를 거둔 정책은 적었다. 각 부처가 상호 공조없이 실적쌓기식 정책을 쏟아내다보니 한편에서 규제를 푼다 해도 또 다른 한편에서는 사실상 규제를 강화해 기업인은 마치 인형극의 꼭두각시처럼 춤추다 지치기 십상이다.

특히 이번 콘텐트산업 육성정책은 인프라, 즉 산업기반 육성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어서 과연 콘텐트산업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한 것인지 조차 의심스럽게 한다. 컨텐트산업을 육성하려면 우선 이 산업이 창조적 내용물없이 기술만으로 가능한 산업인가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창조적 내용물 없는 콘텐트산업 발전은 우리가 고스트류의 영화에서 흔히 보듯 다른 영혼에게 육신만 빌려주는 꼴이 될 위험이 크다. 혼이 들어 있는 내용물은 온통 외국 콘텐트에 의존하면서 육신만 튼튼하게 한다고 콘텐트산업이 발전했다고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국제만화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시기에 다른 한편에선 만화작가들이 붓을 꺾어야 할 상황은 문화적, 사회적으로 성숙한 사회일 수 없다. 미성숙한 사회에서 그 나라의 문화와 함께 자라야 할 콘텐트산업의 육성책은 산업적인 것외에 또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문화란 종종 그 사회의 안티테제일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문화는 바로 그 특성 때문에 그 자체로서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직접 가치를 지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한 사회의 총체적 발전을 이끄는 중요한 축으로서 기능한다.

최근 서점가에서 인기있는 책 가운데 하나가 「네안데르탈」이라는 선사인류 연구를 둘러싼 논쟁사를 다룬 책이다. 고고학, 인류학, 고생물학, 지질학 등 여러 인접학문들이 2백년 가까이 이룩해온 선사인류 연구의 과정과 성과물을 알기 쉽게 다룬 책이다. 이같은 내용의 책이 왜 많은 독자를 갖게 되는지 정책입안자들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껏 당연한 것처럼 인식된 학문적 결실이 공인되기까지에는 국가간 국익다툼, 학자들간 자존심 대립, 종교적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받는 특정사회의 보편적 정서 등으로 숱하게 어려운 과정을 겪어왔음을 알 수 있다.

선사시대 연구에서 그런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겨온 국가들과 사회구성원들이 독점적 우위와 지적 우월감을 향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화는 이제 특정사회의 문화적 자산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자산이기도 하다는 사실인식이 중요하다.

사회의 문화인식 수준은 소수의 학자들만이 아니라 그 분야를 이해하고 소중히 여길 안목이 얼마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되고 평가된다. 명백하게 드러난 유적지조차 개발의 이름아래 깔아뭉개온 우리 사회의 문화인식 수준에서 볼 때 콘텐트산업의 육성책은 더욱 인식의 전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멀티미디어 콘텐트는 명백한 창작물이다. 이런 창작물은 창작자의 태생적 문화, 창작이 이루어지는 사회의 창의적 분위기, 그 위에 이를 물질적 정신적으로 지원하는 자본의 긴 안목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어 태어나게 된다.

콘텐트산업은 사회적 창의력을 키우고 우리 사회의 혼이 깃든 미래를 창조해 나가려는 정치적, 사회적 분위기와 이런 공감대를 살리려는 관련부처의 공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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