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벤처기업이 뛰고 있다 (8);서울스텐다드

도전과 응전 그 현장을 가다 (6)

최근 정부의 민, 군겸용 기술개발사업 확대와 국방전산화 계획이 잇따라 발표되면서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벤처기업이 있다. 용산 관광터미널 지하상가 한쪽에 자리잡고 있는 서울스텐다드(대표 백승하)가 바로 그 회사다.

91년 설립된 서울스텐다드는 최근 시제품으로 선보인 야전휴대형 컴퓨터(모델명 STD-10K)가 전문가들로부터 상업화 가능성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자본참여를 희망하는 창업투자회사 관계자들의 문의전화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창업투자분야 선두주자로 인정받고 있는 한국기술투자(대표 서갑수)가 가장 적극적이다. 이 회사는 최근 서울스텐다드 측에 지분 10%를 인수하는 대가로 2억원을 투자하겠다고 제시했고 두 회사는 현재 구체적인 투자조건을 놓고 마지막 협상을 벌이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이 회사와 전략적 제휴를 제안하는 기업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국내외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삼성전자, 현대정보기술, 쌍용정보통신, LG정보통신, LGEDS시스템 등 국내 간판급 대기업계열 시스템통합(SI) 업체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 업체가 그동안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무명의 벤처기업을 사업파트너로 「모시기」 위해 혈안이 되고 있다는 것은 이변임에 틀림없다.

서울스텐다드는 이처럼 창업한 지 불과 몇 해 안돼 국내 벤처업계의 새로운 유망주자로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국내 벤처업계 사정에 밝은 몇몇 벤처금융가들은 이미 2∼3년 전부터 이 회사의 성공을 점치고 있었다.

심양기 한국기술투자 심사본부장은 『백승하 사장이 서울대 기계과 졸업(85년)과 동시에 국내 최대의 방위산업체인 LG정밀 중앙연구소에 입사, 90년 퇴사할 때까지 그곳에서 포대전산화, 레이저 응용 지문인식장치 등 최첨단 기술이 필요한 국방 전산화관련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섭렵한 베테랑 연구원 출신이기 때문에 투자대상 1호로 일찌감치 점찍어 뒀다』고 밝혔다.

서울스텐다드는 설립 4년째 되던 95년 전국 1천2백개에 달하는 학원 체인을 운영하고 있는 에드네트에 종합전산망을 구축한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LG정밀, 메디슨, 빙그레, 가톨릭대 등에도 종합전산망 구축과 함께 유지보수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등 계속 알찬 성장을 거듭, 이러한 주위의 기대에 보답했다.

이 회사는 특히 에드네트 등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고객회사들에 신속한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서울 용산과 강남 두 곳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것을 비롯해 부산 대구 대전 광주 홍천에도 각각 지국을 운영하는 체제를 확립하는 등 정보통신 유지보수 분야에서는 선발업체로 확고한 뿌리를 내린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매출액도 91년 3억6천만원이던 것이 94년 16억원, 95년 29억원, 96년 42억원 등으로 꾸준히 확대해나가는 동시에 전산망 유지보수 분야도 기술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전산망 구축 및 유지보수사업 분야에서는 확고한 기반을 잡았다고 판단한 서울스텐다드는 지난해 초부터 그동안 꿈꾸어오던 야전휴대형 컴퓨터 개발 등 사업다각화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백 사장은 국방부문의 전산화 작업이 우리나라에서도 곧 추진됨으로써 엄청난 규모의 시장이 창출될 것으로 전망하고 이 분야에서 승부를 걸기로 결심한다. 이러한 결정 배경에는 물론 그가 LG정밀 연구소에서 다양한 국방전산화 프로젝트를 수행한 것이 큰 힘이 됐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최근 정부가 민, 군겸용 기술개발사업 확대와 함께 국방부도 2000년부터 전방의 각 부대에까지 휴대형 컴퓨터 보급을 적극 추진할 계획임을 밝히는 등 군사정보화 분야가 앞으로 황금시장으로 급부상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서울스텐다드가 최근 선보인 야전휴대형 컴퓨터(모델명 STD-10K)는 1m 물속에서도 10분간 견디는 탁월한 방수성능과 함께 섭씨 영하 50도까지의 극한 환경에서도 자료저장은 물론 컴퓨터 작동에 이상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 등 그 성능이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서울스텐다드는 내년 1월 이 제품의 파일럿 생산 및 판매개시를 목표로 최근 방위전산화 부문 국내 정상급 연구원을 다수 초빙, 야전휴대형 컴퓨터 개발팀을 별도로 구성하는 등 상용화 연구에 본격 착수했다.

이 회사가 최근 영입한 연구원 가운데는 사회에서 흔히 성공의 보증수표처럼 인식되고 있는 대기업의 중견간부 자리를 박차고 나왔거나 대학 교수를 꿈꾸던 한국과학기술원 박사 출신 등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점만 봐도 이 회사가 추진하고 있는 야전휴대형 컴퓨터 상용화 프로젝트가 현재 국내 벤처업계에서 어느정도 관심을 끌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서울스텐다드는 이밖에 그동안 대규모 전산망 구축 및 유지보수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앞으로 전자도서관, 팩스자동송신, 원격교육시스템 등 구축사업 분야에도 본격 진출할 계획이다. 이러한 계획을 바탕으로 서울스텐다드는 올해 매출 70억원을 달성하고 이를 98년 1백50억원, 2000년에는 5백억∼7백억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인터뷰] 백승하 서울스텐다드 사장

『언론이 앞장서서 「함량미달」인 벤처기업을 너무 많이 양산하고 있습니다.』

최근 야전휴대형 컴퓨터의 시제품을 발표, 국내 벤처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서울스텐다드 백승하 사장(36)은 요즈음 우리 사회의 벤처기업과 벤처기업가에 대한 이상열기가 여러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국내 언론이 벤처기업이라는 간판만 내걸면 「그들이 모두 이 시대의 영웅」이라도 되는 것처럼 추켜 세우는 바람에 기술수준이 대단할 것도 없는 기업들의 주가까지 장외시장에서 급등현상을 보이는 등 앞으로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최근 국내 벤처기업계에는 언론 등에 자주 소개돼 유명세를 타기만 하면 그것만으로도 주가가 급등, 큰 돈을 번 것으로 착각해 그때부터 기술개발 대신 재테크에 더 큰 관심을 갖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

그는 벤처기업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은 주가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끝까지 「기술개발 우선주의」를 실천해 줄 것』을 거듭 강조했다.

이러한 당부는 그가 91년 창업한 후 6년동안 기술개발에만 주력한 끝에 최근 시제품 개발에 불과한 「야전휴대형 컴퓨터」 하나로 국내 벤처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백 사장이 창업하게 된 계기는 아주 엉뚱한 곳에서 비롯됐다. 백 사장은 LG정밀 연구소에서는 「일벌레」로 통했고 탁월한 연구성과를 여러번 낸 바 있기 때문에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회사에 영업직으로 옮겨 줄 것을 간청하다 그것이 여의치 않자 순전히 영업을 배울 욕심으로 90년 친지가 소개해준 무역회사에 입사한 것이 뜻하지 않게 조기 창업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그가 다니던 무역회사는 외국 컴퓨터 등을 수입, 판매했는데 그가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파산의 위기에 처하자 사주는 그동안 판매한 시스템의 유지보수 업무를 맡을 사람을 찾아 나섰고 마침내 그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인수하게 됐다는 것.

그러나 준비도 없이 뛰어든 사업이 별 무리없이 운영됐다. 백 사장은 그 이유를 『우선 유지, 보수 사업이란 것이 성실하게 일하기만 하면 큰 위험부담이 따르지 않는 사업인데다 직원들이 가난한 사장을 믿고 잘 따라준 덕분』이라며 고마워한다. 그러나 직원들은 오히려 『바쁠 때에는 사장이 시간을 아끼기 위해 손수 오토바이를 타고 고객업체를 방문하는 등 솔선수범을 보이는데 어떻게 우리가 그를 안 따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본사 사무실을 지난해 현재 사용하고 있는 관광터미널로 이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이 회사의 연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선인상가에서는 방범 등 문제 때문에 9시를 넘겨 일하기 위해서는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일에 지장이 많았기 때문에 용산에서 마음놓고 밤늦게까지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맨 끝에 관광터미널 지하상가 한쪽에 둥지를 틀게 됐다는 설명이다.

관광터미널 관리사무소가 밤늦게까지 일할 수 있게 하는 한 당분간 사무실을 옮길 계획이 없다고 말하는 백 사장의 표정에서 「끝까지 기술로 승부하겠다」는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서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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