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LG의 "비메모리" 육성 의지

경기에 민감한 D램 의존도를 줄이려는 업계의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정부도 업계의 움직임에 맞춰 인력양성과 여건개선을 위한 의욕적인 플랜을 마련, 시행할 계획이라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간에도 반도체산업의 균형 발전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으나 최근의 움직임은 실천의지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최근 LG반도체가 발표한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방안에는 그동안 반도체생산 대기업들이 가져왔던 자만심과 독단적인 행태를 떨쳐버리고 중소 전문업체들과 협력해 실질적인 비메모리 비즈니스를 창출해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어 신선한 자극을 준다.

LG반도체는 비메모리사업의 활성화를 위한 고객밀착형 마케팅을 전개한다는 방침 아래 주문형 반도체(ASIC) 및 마이크로컨트롤러(MCU) 등 마이크로 제품군을 대상으로 7개 디자인 전문 벤처기업과 협력체제를 구축하고 기술영업 인력을 국내 시장에 전진배치, 제품개발력은 물론 영업력을 대폭 강화키로 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를 통해 연내에 국내 비메모리 시장의 30%를 점유, 이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공급업체가 되겠다는 포부다.

어느 회사 제품이나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는 「범용 상품」인 D램 등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시스템 IC로 대표되는 비메모리 반도체는 축적된 기반기술을 바탕으로 고객의 요구에 부합하는 다양한 기능의 응용제품을 개발하고 개발단계에서부터 고객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마케팅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대기업, 특히 「무엇이든지 내가 최고여야만 한다」는 사고에 젖어 있는 국내 재벌기업의 속성상 국내 중소업체와의 대등한 입장에서의 협력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이 그간의 사정이다. 실제로 그동안 이뤄졌던 협력에서 이를 주도했던 중소기업들이 표면에 나서지 못한 채 모든 공을 대기업에 돌렸던 경우가 적지 않았었다.

우리가 LG의 이번 발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바로 이같은 관행을 과감히 떨치고 디자인 전문 벤처기업과 개발 및 판매분야에서 협력함으로써 동반성장을 하겠다고 공표한 점과, 협력 벤처기업에 개발비 지원 외에도 시장진입에 성공한 제품의 경우 최고 매출액의 10% 제공을 약속하는 등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간 국내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시스템 응용기술 및 설계기술의 취약점을 창의성이 높고 고도의 전문 설계기술력을 지닌 벤처기업과 손잡고 타개해 나간다는 LG의 전략은 사실 외국 비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채택하고 있는 기본이자 국내 전문업체들이 그동안 목소리 높여 주장해왔던 것이기도 하다. 또한 본지가 지난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한달간 「비메모리 산업의 현주소」라는 기획 시리즈를 통해 정부와 업계, 중소업체와 대기업, 그리고 학계 및 연구기관들의 의견을 듣고 제시했던 대안들과도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제품의 핵심 및 공정기술은 소자업체가 개발, 지원하고 이를 바탕으로 특화된 애플리케이션은 전문 설계업체에서 개발하는 일종의 분업체제를 도입, 서로의 강점을 살리고 역할과 영역을 차별화함으로써 대기업과 벤처기업 간 협력의 시너지효과를 거둔다는 이같은 전략은 소자업체의 비메모리사업 정착과 중소업체의 성장을 함께 꾀할 수 있는 대안으로 생각된다.

대량생산, 적기공급이 사업의 핵을 이루는 메모리사업과 달리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고객 및 요소 기술을 갖춘 전문업체들과의 긴밀한 협력관계가 성패를 좌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LG의 시도가 계획한 만큼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아직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일단 가닥은 제대로 잡힌 것으로 평가된다.

이같은 현실적인 비메모리 육성 계획들이 앞으로도 계속 나와 메모리 위주의 편재된 반도체 강국의 오명을 씻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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