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러시아 컴시장 위기인가

러시아의 컴퓨터 시장이 과연 위기를 맞고 있는 걸까.

88, 89년 무렵에 본격적으로 형성된 러시아의 컴퓨터 시장이 수요 부족으로 드디어 위기에 처하게 됐다는 아우성이 업계 내부에서 터지고 있다. 예년 같으면 휴가철인 1월의 비수기를 지나 3월께에 판매가 크게 신장되고, 4월 무렵에는 재고 창고에 컴퓨터가 없어서 못 팔 지경이 될텐데 사실 올해는 유통 상가가 웬지 한산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조짐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한 점이다.

러시아의 컴퓨터 시장이 이같이 위기를 맞고 있는 원인으로는 여러가지가 지적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재정난으로 인해 정부 기관들의 컴퓨터 구매력이 축소되고, 아울러 금융 위기로 은행들의 컴퓨터화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대표적이다. 금융권은 정부 기관들과 더불어 러시아의 컴퓨터 시장을 고속으로 성장시킨 중심 고객이었기 때문이다.

컴퓨터 경기의 침체는 지난 연말 부분적으로 감지됐다고 할 수 있다. 예년 같았으면 일년치 예산 배정액 가운데 연말에 남은 돈을 정부 기관들이 컴퓨터 구입에 쓰기 때문에 컴퓨터업계에 활기가 돌았을 터인데 지난해는 사정이 달라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특히 올 봄의 불경기는 일부 업체의 경우 정도가 심해서 신규 수요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이미 정부기관으로부터 받아 놓은 수주 물량마저도 예산 부족을 이유로 주문이 취소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컴퓨터 경기가 8년여 만에 심상치 않다 보니까 선금을 받지 않고 물건부터 공급해 주는 관행도 훨씬 줄어들었다. 특히 자국 은행들이 보증하기 때문에 소비자들로부터 신용을 받고 있는 외국 컴퓨터 판매업체들은 타격이 덜하지만, 그렇지 못한 러시아 국내 컴퓨터업체들은 여간 울상이 아니다. 이들은 국가의 재정 위기가 바로 컴퓨터 산업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한편 LVS社의 레오나드 보고슬라브스키 영업이사는 현재의 컴퓨터산업 위기가 야기된 이유를 업계 내부에서 찾는다.

『컴퓨터 관련 기업들이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급성장하는 바람에 조직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종업원들 사이에 회사의 성장에 기대어 무위 도식하는 풍조가 만연한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지금의 컴퓨터 산업 위기가 왔다』는 것이 레오나드씨의 진단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컴퓨터 시장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부류도 상당수 있다. 컴팩 러시아지사의 알렉산드르 칸씨는 『우리는 국방부와 국가안전기관 같은 권력기관의 컴퓨터화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영업 면에서 신장세를 계속 누리고 있다』면서 『서방으로부터 금융지원을 받고 있는 체제가 영업면에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벨르이 베체로사의 유리 두보비스키 대표 또한 『정부 기관과 은행들의 컴퓨터 수요가 줄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신에 각 가정에서 컴퓨터 구매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 일시적인 침체에서 벗어나 앞으로 컴퓨터 붐이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이와 함께 재정 위기와 금융 위기를 전반적으로 맞고 있지만 각 정부 기관과 은행에 축적된 자금이 상당히 있기 때문에 이들이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 이전처럼 컴퓨터를 앞다퉈 구매할 것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하지만 컴퓨터 업계의 전반적인 전망은 연간 10배 내지 12배의 판매 신장세를 보이던 호시절은 다시 오기 힘들 것이며, 컴퓨터 시스템 공급자들의 전문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스티플러사의 안드레이 치글라코프씨는 『러시아의 컴퓨터 시장이 아무 나뭇가지든 심기만 하면 무럭무럭 자라나서 나무가 되는 나일강의 델타가 더 이상 아니다』라고 전제하고, 『업계의 전문화, 세분화와 함께 이 분야의 기업 합병이 올 하반기부터 본격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야흐로 대형 컴퓨터 기업이 작은 기업들을 먹어치우는 기업 합병의 파도가 러시아의 컴퓨터 시장에 몰아칠 것이라는 전망인데, 이같은 예상은 업계 관계자 대부분이 수긍하는 대목이다.

<모스크바=김종헌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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