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165)

진기홍 옹은 다시 지하철 역으로 발길을 옮겼다. 바람이 불고, 손톱만큼 남은 저녁 해가 안쓰럽게 인왕산 능선에 걸려 있었다.

후둑후둑, 가로수 잎을 흩날리는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진기홍 옹은 요람일기가 쓰여질 당시의 정황을 다시 떠올렸다.

일본은 전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우리의 전신망을 완전히 장악했다. 1904년 2월 13일에는 우리의 모든 전신시설을 일본군이 전용하겠으니 응낙하라고 요구하였는데, 이러한 공식적인 요청은 실상 형식상의 행위에 불과한 것이었다. 일본은 이미 우리의 전신시설을 무력으로 점거하고 있었다.

이튿날 우리 정부는 일본군이 전선을 전용하겠다고 청탁하기도 전에 이미 전기통신 시설이 수용되어 있던 한성전보총사에 침입한 사실에 대해 일본 공사관에 항의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일본은 그달 15일과 16일에도 역시 우리 정부의 승낙 없이 한성전보총사에 침입하여 통신기를 따로 설치하고, 일본군 통신소 사이에 전선을 가설함으로써 각지로부터 오는 전신과 전화를 일본군의 통신선에 연접했던 것이다.

전쟁 당시 무력에 의한 일본의 통신기관에 대한 강점행위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데, 이러한 사실을 적나라하게 기록해 놓은 것이 바로 요람일기였다.

진기홍 옹은 일본군의 통신피탈 과정과 함께 러시아군에 의한 서북지방에서의 통신시설 침탈사건을 요람일기에 기록한 당시 통신원 체신과장 김철영을 떠올렸다.

김철영.

한 인간의 개인적 노력이 역사의 한 부분을 명확하게 밝혀 준 것이었다. 요람일기가 없었다면 일본이 저지른 불법행위의 구체적 양상과 전신망의 강제독점 과정을 파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진기홍 옹은 당시 일본이 불법으로 우리의 통신시설을 강점한 과정을 머리 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당시 일본측의 불법행위는 1894년의 청나라와 일본이 우리 땅에서 벌인 전쟁 당시와는 그 양상을 달리했다. 청일전쟁 당시 일본은 우리 전선을 점용하거나 그들의 전선을 새로 가설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와의 전쟁중에는 우리의 통신선에 불법으로 그들의 통신선을 연결하는 경우가 많았고, 우리의 기존 통신기관을 그대로 둔 채 무력으로 위협, 이를 마음대로 관할하고 운영했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의 통신시설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하는데, 일본은 통신시설의 강점은 물론 전화내용을 도청하고, 전보내용을 검열하였으며, 우리의 관원을 마음대로 부려먹는 등 그 정도는 매우 심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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