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우울한 일들이 안팎으로 이어질 때 마음놓고 웃을 수 있는 영화가 있음은 행복한 일이다. 그 영화가 TV코미디와 다른 고급 웃음을 선사해준다면 더욱 반갑다. 양영철 감독의 데뷔작 「박대박」은 바로 이러한 관객들을 위한 영화다. 이 영화는 시종 1백분 동안 건강한 웃음을 선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박대박」은 「그 애비에 그 아들」이 벌이는 코미디 한판. 판사 아버지(주현 분)와 변호사 아들(이정재 분)은 부자간이라기보다 거의 앙숙에 가깝다. 서로 호흡이 맞는 것은 아주 잠시 뿐이고 바로 그것 때문에 이들의 실랑이는 오래 계속된다. 사실 부자라는 말도 관객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아들인 박수석은 아버지를 「박판사」라고 부르며, 아버지인 박기풍은 아들을 「우리집에 세들어 사는 놈」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아들의 작은 자동차와 아버지의 큰 자동차 사이에 일어난 사소한 접촉사고를 놓고도 맺고 끊음을 분명히 하는 부자지간인 것이다.
사실 이들 부자는 희극적인 인물이 되기엔 부적합한 이력을 가진 인물들이다. 박수석은 산모를 사망케 하고 출생한 인물이며 박기풍은 바로 그 때문에 오랜 동안 홀아비 생활을 해야했던 인물이다. 두 사람의 불행은 서로 관련돼 있으며 아주 특이한 비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아침엔 아들 생일상을, 저녁엔 마누라 제삿상을 차려야 하는 자신의 신세를 홍 마담의 젖가슴을 만지기 위한 동정심 유발용으로 이용하는 순간 아버지 박기풍은 구제불능의 희극적 인물이 된다. 또 『내 생일이 곧 어머니 기일』이라며 신에게 버림받은 듯한 표정을 짓다가 그것이 깐깐한 김미정(이혜영 분)의 동정심을 자극했다고 믿는 순간 그 기세를 이용해 그녀의 젖가슴을 주무르려다가 퇴짜맞는 아들 박수석 역시 못말리는 인간이다. 그야말로 그 애비에 그 아들인 것.
이 영화에서 박수석은 이혼 전문 변호사이다. 그가 하는 일이란 게 어떻게든 부부를 갈라놓아 수수료를 챙기는 것. 그는 결혼한 사람들은 마땅히 이혼해야 한다는 듯이 온갖 편법을 동원해 이혼을 성사시켜 놓는다. 마치 세상을 향해 자신의 처지를 복수하듯이 남편은 아버지가 되지 못하게, 아내는 어머니가 되지 못하게 결혼한 남녀를 떼어놓는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이혼성사율 99%의 변호사」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지만 그때부터 매품을 파는 사람처럼 좌충우돌하며 매맞기에 바쁘게 된다. 변호사가 매를 통해 성숙한다는 블랙코미디적 요소가 엿보인다.
한 편의 영화에서 시나리오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그 작품의 완성도가 크면 클수록 덜 느껴지는 측면이 있지만 그럴수록 더 칭찬받아 마땅하다. 시나리오 작가 신인호는 영화 「박대박」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배우 명계남은 또한번 빛나는 조연을 했으며, 주현과 이정재의 멋진 콤비플레이가 돋보이는 영화다.
<채명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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